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생계급여 아껴 1.5억 기부, 휠체어 봉사…올해의장애인 이병길씨

by


"아픔으로 공감의 눈 떠…장애, 결핍 아닌 깊은 사랑 가능하게 하는 것"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받은 만큼 보답하는 거죠. 사회가 나에게 준 도움에 대해서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몸의 건강에서 오는 게 아니라 기부와 봉사에서 오더라고요."
선천성 중증 혈우병·소아마비 중복 장애.
이병길(69)씨는 이러한 질환과 장애를 갖고 있어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한다. 서른 살 무렵에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1만명 중 한명 꼴로 발생하는 혈우병으로 언제 몸속 어디에서 출혈이 일어날지 모른다. 약이 없던 시절엔 지혈이 안 돼 한번 출혈이 생기면 병원에서 대량으로 수혈받아야 했다.
"심지어 걷기만 해도 관절에서 출혈이 일어나 관절이 다 굳어요. 무릎을 구부릴 수도 없고 오른손은 펜대를 잡은 모양으로 굳어버렸어요."
병명조차 생소했던 시절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난 이씨는 혈우병 진단도 30세가 다 돼서야 받았다.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업혀 험한 산길을 오가며 학교에 다녔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방 안에 누워 라디오를 들으며 보냈다.
마흔 살 무렵 또다시 혈우병으로 입원하게 된 그는 수천만원의 치료비가 밀려 "죽으면 죽었지, 병원은 못 가는 처지"였다. 그때 사연을 들은 지자체에서 조치를 취했다. 이씨를 의료보호(의료급여) 1종 수급자로 등록한 것이다.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되고 국내에 혈우병 약도 들어와 이씨는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되자마자 "내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주변 독거 어르신들에게 쌀을 사다드리며 작게 시작했어요. 그러다 욕심이 생겨서 (생계)급여를 아낀 돈으로 기부도 하고, 어르신들을 병원에 모셔다드리려고 운전면허를 따서 봉사도 하게 됐죠."
이씨는 기부를 위해 각종 대회 상금까지 내놨다. 집에서 지내며 갈고닦은 바둑, 작문 실력이 빛을 발했다. 장기·바둑대회와 수필 공모전 등에 참여해 받은 상금을 기부했다.
장애·노령연금을 받게 된 이후로는 그조차 기부하고 있다. 이렇게 이씨가 26년 동안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원 홍천군 장학회, 장애인협회, 사회복지관 등에 기부한 금액은 1억5천만원에 이른다.
수급자로서 본인이 살기도 빠듯한데 왜 그렇게 절약을 해 기부하는지 이씨에게 물었다. "감사와 행복"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작은 제가 살아나도록 도와준 사회에 대한 고마움이고요, 이후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행복 때문이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씨는 독거노인과 중증장애인 등을 위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상생활 지원·병원 동행보다 더 큰 봉사는 '따뜻한 이웃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팔봉산 경치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홍천에 있는 산인데도 거동·운전이 힘드시니 엄두를 못 냈던 거죠. 제가 모시고 갔더니 '방 안에만 있다가 경치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펑펑 울며 고맙다고 하시는데, 봉사를 어떻게 그만두겠어요."
병과 장애로 평생을 힘들게 지내왔고 한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씨는 긍정과 감사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중증 장애인 중에는 바깥에 나오기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분들에게 강제로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요. 다만 이렇게 장애인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공헌으로 그는 지난 18일 제45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 상을 받았다. 이씨는 "삶의 언덕을 함께 넘은 사람들과 상을 나누고 싶다"며 홍천의 이웃들과 활동지원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상금 500만원 또한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아픔 덕에 공감의 눈을 뜨게 됐고 그게 자연스레 나눔으로 연결됐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사랑을 더 깊이 품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fat@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