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아산 홈구장 이순신종합운동장 건물 내 한쪽 벽엔 충남아산 구단의 역사가 새겨져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충남아산을 이끈 박동혁 감독 옆에 2024시즌 K리그2에서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이끈 김현석 전 감독과 배성재 현 충남아산 감독 사진이 걸려있다. 노란 안경을 쓴 김현석 전남 감독이 사전 인터뷰를 한 장소가 공교롭게 사진 아래였다. 지난시즌을 끝으로 충남아산을 떠나 전남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친정에 온 것 같다. 이곳에서 고생했던 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라며 감회에 젖었다. 김 감독과 배 감독은 2024년 충남아산 감독과 수석코치로 역사를 함께 써내려갔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만큼 스승과 제자의 지략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김 감독은 "지금 충남아산의 인버티드 풀백 전략과 스위칭 플레이, 그리고 현재 몸담은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라며 마치 충남아산이 자기 손바닥 위에 있다는 듯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런 충남아산의 전략에 맞춰 변형 수비 라인까지 준비했다고 말했다. 배 감독도 선배에 대한 공경을 표하면서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2024시즌 충남아산 전술과 전략을 내가 짰다. (우리를 잘 안다고 하지만)2025년 충남아산은 다를 것이다. 내가 직접 짠 세트피스 전술만 40~50가지는 된다"라고 받아쳤다. 또 전남의 플레이스타일이 인창수 전남 코치의 영향으로 김포와 비슷하다고 평했다. 김 감독이 들으면 그다지 반길만한 평가는 아닐 듯하다.
서로의 성향을 너무 잘 아는 탓일까. 야심차게 준비한 전술이 미처 펼쳐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균열이 발생하지 않았다. 11분 전남 장신 스트라이커 호난의 골문 앞 헤더가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21분 전남의 역습 상황에서 정강민이 쏜 슛을 충남아산 골키퍼 신송훈이 막았다. 두 번의 결정적인 위기를 넘긴 충남아산은 이후 3경기만에 엔트리 복귀한 미드필더 손준호를 중심으로 한 패스 플레이로 볼 점유율을 높여가며 상대 골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널티 박스 안팎에 많은 수비 숫자를 두는 전남 수비진을 상대로 쉽사리 결정적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전반 34분 상대를 향한 깊은 태클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한 호난은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을 거쳐 경고로 정정되며 구사일생했지만, 하프타임에 하남과 교체됐다. 0-0으로 끝났다. 김 감독은 후반 '에이스' 발디비아까지 투입하며 일찌감치 승부수를 띄웠지만, 도리어 충남아산에 주도권을 내준 채 끌려갔다. 김 감독은 "비긴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밀렸다. 전남 입장에선 다행, 충남아산 입장에선 불행히도, 충남아산의 18개 슈팅 중 단 하나도 골망에 닿지 않았다. 배 감독은 "18번의 슈팅과 13개 코너킥을 기록했다. 골이 안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해도 안 들어간다"라며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김종민 데니손, 강민규 한교원 아담 등 공격수들이 해결을 해줘야 한다. 줏어먹든, 때려넣든, 득점을 해야 팀도 살아난다. 나도 책임감을 갖고 템포와 속도, 득점 루트에 대한 훈련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막판 하남의 골문 앞 헤더가 충남아산 골키퍼 신송훈의 선방에 막혔다. 충남아산도 아담과 김종민이 연거푸 결정적인 찬스를 날리면서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배 감독은 "경기를 준비하면서 김 감독님에게 우리가 작년에 했던 축구가 얼마나 무섭고 힘든 축구인지 보여주자고 선수들과 얘기했다. 전반부터 빠르게 속도를 높여서 측면에서 빌드업했던 게 주효했다. 문제는 후반전도 그렇고 득점이 터지지 않은 부분이다. 교체를 통해 게임 체인저를 넣고 싶었지만, 끝내 득점이 터지지 않았다"라고 아쉬워했다. 김 감독은 "(충남아산에서 뛰는)제자들이 전임 감독 한번 이겨볼라고 칼을 너무 간 것 같다. 농담이다. 한편으론 겁도 많이 났다. 팀이 탄탄해져가는 것 같다. 제자들이 활약을 하고 좋은 팀으로 변모되는 게 보기 좋았다"라고 덕담으로 제자들과의 첫 맞대결을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던 김 감독은 양복을 만지작거리며 "이제 이 (행운의)양복을 벗어야 할 것 같다"라고 조크했다. 아산=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