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이것이 ABS다'이 결정판.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양의지가 주저 앉았다. 너무 억울하고 황당해서.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억울할 게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어떤 사연이었을까.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6회말 2점을 먼저 뽑은 두산은 7회 3점을 내주며 역전을 당했다. 8회에는 선두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으나, 대주자 전다민이 견제사에 걸려 아웃되는 허무한 상황이 연출됐다.
두산은 9회초 마무리 김택연까지 올리며 지는 경기를 뒤집겠다는 의욕을 보였지만, 김택연과 양의지의 송구 실책 등으로 인해 3점을 헌납하며 패배 위기에 몰렸다.
그래도 9회말 희망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KIA 마무리 정해영이 1점차에서 4점차로 벌어지며 긴장이 풀렸는지, 1사 만루 위기를 만들어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타석에는 양의지. 한 방이 있는 강타자. 두산 응원석에서는 "만루 홈런" 구호가 터져나왔다. 홈런이 아니더라도, 2~3점을 따라가면 경기 양상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었다.
양의지는 정해영의 초구 직구에 헛스윙을 했다. 2구째 슬라이더는 맞혔지만 파울.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렸다.
KIA 포수 한승택은 카운트에 여유가 생기자 아예 일어서 높은 공을 유도했다. 높은쪽을 보여주고, 그 다음 낮은 공으로 현혹하겠다는 전통의 볼 배합. 그런데 정해영의 '역투'가 발생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진 역투가 아니라, 포수 리드와 반대로 들어간 역투. 한승택은 서있는데, 공은 포수 발쪽으로 향했다.
깜짝 놀란 한승택은 공이 뒤로 빠질까, 급하게 몸을 웅크려 공을 잡아냈다.
한승택이 원바운드공을 잡듯, 미트를 땅에 대고 넘어지며 잡았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구심이 스트라이크 아웃 판정을 내린 것. 양의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땅에 주저앉았다. 심지어 공을 던진 정해영도 멋쩍은 웃음을 짓는게 중계 화면에 잡혔다.
무슨 일일까. 지난해부터 도입된 ABS. '인정'이 없다. 존만 통과하면 스트라이크다. 포수가 서있든, 누워있든, 프레이밍을 안해 존 바깥에서 공을 잡든 기계가 설정한 존에만 공이 통과하면 스트라이크다. 하지만 2년 전까지 사람 구심이 판정을 했다. 그 때는 달랐다. 정말 엄밀히 따지면 존을 통과해도, 이번 사례처럼 역투가 되거나, 포수가 마지막 포구한 위치가 존 밖이면 대부분 볼이 선언됐다. 낙차 큰 커브도 포수 미트가 바닥 근처면 다 볼이었다. 심판도 사람이기에, 마지막 포구 위치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타자들도 수긍을 했다. 이번 양의지, 정해영 대결 장면을 ABS 이전 시대로 돌리면 99.9% 볼 판정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양의지가 억울하거나 아쉬워할 상황이 아니다. 위에서 이미 힌트를 언급했다. ABS는 기계다. 포수가 서있다 넘어지며 잡든, 누워있다 일어서서 잡든 공은 존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프레이밍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 전까지는 포수들의 현란한(?) 미트질에 속아넘어가는 심판들도 많았다.
양의지가 포수 위치나 자세를 알고 타격하는 게 아니라면, 들어오는 공에만 집중했다면 정해영의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단해 타격에 나섰어야 했다. 포수가 넘어지며 잡았다고 아쉬워할 이유가 사실은 전혀 없는 장면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 사람 구심과 야구를 해온 양의지였기에, 절체절명의 순간 당연히 볼이 돼야한다고 생각한 순간 삼진 콜이 나오다 너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다.
잠실=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