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약세 막느라 힘든데 원화약세 유도?…엔화·위안화 타깃 관측
'부가세 장벽'도 EU 겨낭한듯… 덤핑·수출보조금·정부지원금도 韓관행과 안맞아
(세종·서울=연합뉴스) 이준서 이슬기 기자 =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8가지 비관세 부정행위'(Non-Tariff Cheating)에 한국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환율조작을 첫 번째로 꼽으면서 ▲ 부가가치세 ▲ 원가 이하 덤핑 ▲ 수출 보조금 및 기타 정부 보조금 ▲ 자국 산업 보호용 농업 기준 ▲ 보호적 기술 기준 ▲ 위조, 도용 등 지식재산권(IP) 문제 ▲ 관세회피 환적 등을 열거했다
21일 소관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안팎에서는 팩트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은 한국과 거리가 있다는 시각이다.
우선 원/달러 환율이 중기적으로 급등하면서 외견상 '원화 약세'가 부각되고 있지만, 이는 우리 외환당국으로서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국면이다.
어느 나라든지 통용되는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 방식으로 급격한 원화 약세에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3월말 4천96억6천만달러로, 작년말(4천156억달러)보다 감소했다. 연말 기준으로도 2019년말 이후 5년만에 최소액을 기록했다.
우리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으로 원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은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환율조작은 팩트 상으로도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은 일본 엔화 또는 중국 위안화가 아니겠느냐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1980년대 급격한 엔화절상을 유도한 플라자합의의 시즌2, 이른바 '마러라고 협정'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흘러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가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꾸준히 거론했던 부분으로, 기본적으로 유럽연합(EU)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통상 부가세 시스템을 갖춘 국가의 기업들은 미국에 수출할 때 부가세를 환급받은 뒤 상대적으로 낮은 판매세만 부담하면 된다. 반면 외국에 수출하는 미국 기업들은 미국에서 내지 않는 높은 세율의 부가세를 부담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이유를 들어 부가세를 불공정한 무역 장벽이라고 비판해왔다.
한국의 부가세율은 10%로 미국의 판매세율보다 높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불공정한 관세'로 간주하고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다.
유럽 각국의 부가세율은 스위스 8.1%부터 헝가리 27%까지 다양하지만 대체로 한국보다는 높은 편이다.
국가별로 비교해보면 한국의 세율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트럼프의 주요 타깃이 아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그들(EU)은 20%의 부가가치세를 매기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높다"며 "그것은 거의 관세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행위로 열거한 원가 이하의 덤핑, 수출 보조금, 정부 지원금 등도 자유무역 원칙을 중시해 온 한국의 통상 관행과 맞지 않으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통상업계 일각에서는 향후 한미 통상 협상에서 일부 비관세 장벽이 논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 제한 등 디지털 통상 장벽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에 앞서 비관세 장벽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온 점을 감안해, 향후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관련 오해를 해소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인 데다, 재협상 과정에서 비관세 장벽 대부분이 해소된 상태"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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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