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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위기'에 경쟁서 동업자로…철강 1·2위 "관세장벽 넘자"(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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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신규 제철소 공동 투자…포스코·현대차 전략적 협력 전격 발표
과잉공급·통상 압력·친환경 도전 '복합위기'…'오월동주'식 발상 전환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이슬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사업 불확실성에 휩싸인 국내 철강 1·2위 기업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미국 현지에서 신규 제철소 건설에 함께 투자해 관세 장벽을 넘자고 의기투합했다.
글로벌 공급 과잉, 통상 압력, 친환경 전환 도전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한 국내 철강 업계의 거인들이 이례적으로 '오월동주(吳越同舟·적대적인 세력이 서로 협력함)'식 생존 도모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차그룹은 21일 체결한 '철강 및 이차전지 분야의 상호 협력을 위한 MOU'를 통해 현대제철이 미국에 짓기로 한 전기로 제철소에 포스코가 지분 투자를 통해 '동업자'가 된다는 내용을 공식화했다.
현대차그룹 자회사인 현대제철은 오는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를 설립할 계획인데, 포스코가 이 제철소에 일정 지분을 투자하는 것이다. 합작 제철소의 생산 물량 일부는 포스코가 직접 판매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구체적인 지분 투자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강판에 특화한 이 제철소는 연간 270만t 생산 규모를 갖출 예정이다.
이번 합작은 자금 사정으로 총 58억달러(8조5천억원)에 달하는 제철소 투자금 가운데 절반을 외부에서 충당해야 하는 현대제철과 트럼프 대통령의 25%의 철강 관세를 피해 북미 생산 거점 마련이 절실해진 포스코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이뤄졌다.
국내외 시장에서 강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던 업계 1·2위 기업이 동업 결정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로 손꼽힌다.
그간 글로벌 철강 업계에서는 2014년 유럽 철강사 아르셀로미탈과 일본제철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앨라배마주에 AM/NS 캘버트 제철소를 합작 형태로 인수해 운영한 등의 사례 등이 있기는 했다.
다만 이는 내수 시장에서 경합하지 않는 철강사들이 제3국 시장 진출이라는 공동 이익 도모 차원이었다는 점에서 안방 시장에서도 경합 관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합작과는 차이가 있다.
포스코그룹과 현대차그룹은 1970년대부터 50여년에 걸친 철강 공급사와 고객사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현대차그룹이 철강 계열사를 통해 자체 자동차 강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포스코가 강판 원료인 열연코일 공급을 중단하는 등 대립이 심해진 적도 있다.
이후 양측은 경쟁과 협력이 공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았다. 포스코그룹의 입장에서 보면, 현대차그룹은 철강 분야에서는 경쟁사이지만 자동차 사업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핵심 고객이다.
2021년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열연코일 운송선을 할 때 사용하는 전용선을 공유하기로 한 것이나, 2022년 현대제철이 포스코케미칼과 협력해 당진제철소 1고로 개수 작업을 추진한 것 등은 경쟁 속 협력의 구도가 정착됐기에 가능해진 사례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철강 업계, 나아가 한국 산업계를 둘러싼 심각한 도전에 따른 위기의식 심화가 두 그룹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다.

최근 수년간 한국 철강 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 국내 건설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위축,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환경 규제 강화 속에서 사업 침체의 늪에 빠진 모습이다.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의 작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보다 38.5%, 60.6% 감소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제철의 경우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이번 제휴에 대해 "철강 산업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라며 "공급 과잉에 트럼프발 통상 압력,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거대한 외부 변화 앞에서 결국 국내 1·2위 기업이 힘을 합쳐 파고를 넘어야 한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역할을 한 것 같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두 철강 자이언트 기업이 힘을 합친 것은 우리 산업계에 주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 방향이 제시되진 않았지만, 양 그룹이 미국 제철소 공동 투자 외에도 저탄소 철강 개발, 이차전지 소재 등 전략적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 역시 한국 산업계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극복을 위한 생존 모색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양 그룹은 철강 분야에서 신규 제철소 건설 합작 외에도 탄소 저감 철강 생산을 위한 효과적 탄소중립 전환까지 협력하기로 했다. 이 분야에서는 포스코그룹이 국책 연구 과제이기도 한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금 현대제철은 수소환원제철을 안 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같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의 이차전지 소재 분야 협력 강화 방향도 눈길을 끈다.
양측은 리튬에서 양·음극재 등 포스코그룹의 이차전지 소재 사업 경쟁력과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 기술력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공급망 구축과 차세대 소재 개발 분야 등 지속 가능한 협업 지점을 찾아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장상식 원장은 "국내외에서 업계 1∼2위 기업간 합병이나 특정 사업 분야에서의 협력 사례는 있었겠지만, 이번처럼 회사의 거의 모든 미래를 담보하는 전 영역에서 협력하기로 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cha@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