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말 그대로 파죽지세, 거인군단이 폭발적인 상승세로 어제와 달라진 오늘 속에 찬란한 내일을 열어가고 있다.
출발은 썩 좋지 않았다. 개막 후 지난 9일만 해도 9위까지 내려앉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NC 다이노스와의 3연전(2승1패)을 시작으로 반등, 단 열흘 만에 단숨에 2위까지 치고 올라오는 폭풍 질주를 뽐냈다. 지난주에도 키움 히어로즈-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주간 5승1패의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최근 10경기 8승2패다.
그 중심에 '명장' 김태형 감독이 있다. 지난 시즌 롯데 지휘봉을 잡은 이래 첫 5할 승률(10승10패1무) 이후 폭발적인 상승세를 타며 2023년 이후 첫 2위까지 기록했다. "잘하는 선수는 계속 쓴다"는 두산 베어스 시절부터의 선수 기용 철칙을 지킨 결과, 롯데는 '절대 1강' LG 트윈스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뜨겁게 빛나고 있다.
시즌 초 흔들림은 지난해 상승세를 보였던 신예 타자들의 동반 부진에 기인했다. 이른바 '윤고나황손' 중 부상과 부진 등의 이유로 2군을 다녀오지 않은 선수는 나승엽 뿐이다. 이로 인한 득점력 부족이 문제였다.
2년 연속 초대박 트레이드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지난해 홈런을 뻥뻥 치며 클린업트리오 한 자리를 꿰찬 손호영이 키 카드였다면, 올해는 초대형 트레이드의 주역 전민재와 정철원이다.
전민재는 수비에서 주전 유격수로서 내야의 안정감을 이끄는 한편, 타격에서도 4할을 오르내리는 불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승리를 위한 점수가 쌓이고 나면 홀드 부문 공동 1위(7개) 정철원이 어김없이(14경기, 등판횟수 전체 3위) 출격해 승리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더그아웃과 불펜을 뜨겁게 달구는 폭발적인 세리머니로 황성빈 못지 않은 분위기메이커로 거듭났다. 정철원은 "개인 기록은 언제든 해낼 수 있다. 무엇보다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두 선수와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지켜봤던 김태형 감독이다. 트레이드 영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령탑의 영향력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선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해 가장 필요했던 포인트(필승조 불펜, 유격수)를 보강했다.
선발진에선 박세웅이 개인 통산 한경기 최다 삼진(12개)을 기록하는 등 등 생애 최고의 해를 예고하는 상승세다. 퀄리티스타트 3번(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의 호투를 바탕으로 다승 공동 1위(4승)를 질주중이다.
리그 최다 등판(17경기)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안정감을 뽐내며 불펜의 한 축으로 성장한 정현수의 역투도 놀랍다. 이제 원포인트 릴리프가 아닌 1~2이닝을 책임지는 브릿지 역할로 활용될 만큼 김태형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
여기에 장발을 깨끗하게 정리한 마무리 김원중은 평균자책점 0.79의 짠물 피칭으로 뒷문을 단단하게 걸어잠그고 있다. 김민성과 전준우 등 베테랑들도 고비마다 분발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사령탑의 용병술도 인상적이다. 김태형 감독은 시범경기부터 시즌 초에 걸쳐 선수단에게 두루 기회를 줬다. 이런 과정을 통해 흐름이 잡히는 순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트레이드로 영입된 전민재는 물론 황성빈의 리드오프 및 중견수 고정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은 한번 결심한 순간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고, 두 선수는 팀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전과는 달라진 나승엽(홈런 공동 4위, 5개)의 장타력이 연일 불을 뿜는 가운데, 고승민도 사령탑의 신뢰 속 테이블세터로 자리잡았다. 어느덧 팀 타율 2위(2할7푼9리) OPS 3위(출루율+장타율, 0.743)로 지난해의 화력을 되찾았다.
불펜 정철원과 정현수의 부담이 크긴 하지만, 둘의 헌신이 없었다면 롯데는 시즌초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가능성이 높다. 타고난 승부사답게 '힘들지만 버텨줘야한다'는 마음으로 시즌 초임에도 과감하게 밀어붙였고, 그 결과 반전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해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에게도 납득할 만한 기회를 부여했다. 박승욱과 윤동희는 시즌초만 해도 경쟁 상대 없는 확실한 주전 야수였다. 충분한 기회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2군으로 내려 경쟁구도를 만들었고, 그 결과 기회를 얻은 내야의 전민재-김민성, 외야의 장두성이 현재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즌 초 롯데에게 최대 고비가 닥쳤다. 7연승 중인 한화 이글스와의 맞대결이다.
두 팀 공히 마지막 우승이 20세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롯데는 1992년, 한화는 1999년이다. 마지막 가을야구도 롯데는 2017년, 한화는 2018년으로 가장 오래됐다. 서로를 대표하는 이미지, 갈매기와 독수리를 묶은 '조류동맹'이란 애칭에는 오랜 하위권 동반자의 감성이 담겨있다.
올해는 다르다. 한화는 폰세 와이스 류현진 문동주로 이어지는 막강 선발진과 마무리 김서현을 앞세워 최근 7연승을 질주, 리그 2위까지 올라섰다. 양팀 모두 상승세의 정점에 맞붙게 됐다. 결과에 따라 한쪽은 순위표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 시즌 초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격돌.
여기에 김태형-김경문 감독은 두산 시절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제지간이다. 지난해는 롯데가 9승7패로 상대전적 상 우세를 기록했다. 월초 맞대결에선 롯데가 2전 전승을 기록했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