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육군특수전사령부 대대장의 마지막 법정 진술이 군 안팎에 울림을 준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김형기 제1특전대대장(중령)은 21일 재판 말미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며 심경을 밝혔는데 그 내용이 우리 사회에 '진정한 군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진다.
김 대대장은 사관학교를 나온 소위 엘리트 출신이 아니다. 사병으로 입대해 부사관을 거쳐 장교로 임관한 그야말로 군 밑바닥부터 올라온 일선 지휘관이다. 그는 "23년의 군생활 동안 과거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게 한 가지가 있다"면서 그것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해왔다"며 "그 조직은 제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고 했다.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이다.
그는 "누군가는 저에게 항명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저희 조직은 철저하게 상명하복을 기본으로 운영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라며 "그렇지만 상급자 명령에 복종하는 건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을 때 국한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12월 4일에 받은 임무를 제가 어떻게 수행하겠냐"고 반문했다. 앞서 지난 14일 재판에서 김 대대장은 이상현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으로부터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정당한 지시인지에 대한 판단과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하달받은 임무를 부하들에게 내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번 비상계엄이 유혈사태로까지 확대되지 않고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었던 데는 김 대대장같이 군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한 영관급 장교들의 힘이 컸다. 그들은 부당한 명령에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저항했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도 그 중 한명이다. 조 단장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리는 지시를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언을 했고, 이날 재판에서도 "군에 명령은 굉장히 중요하고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아주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반드시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며 거듭 소신을 밝혔다.
김 대대장은 이날 발언을 마무리하며 "군이 다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게 제 뒤에 계신 분들(취재진)이 날카롭게 비난하고 질책하면서 감시해달라.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은 45년 만에 또다시 군에 '계엄군'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주요 장성급 지휘관들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부당한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복종해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실추시켰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방장관에 예외없이 예비역 장성이 임명됐다. 현역 군인은 국무위원인 국방장관을 맡을 수 없지만 예비역으로 전역하면 가능하다. 합참의장이나 각 군 참모총장으로 근무하다 오전에 전역하고 오후에 곧바로 장관에 취임하는 경우도 있었다. 군대에 여러 인연이 있는 장성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다 보니 이번처럼 '충암파'니 '용현파'니 하는 군내 특정 인맥이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일까지 가능할 수 있었다.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대통령)이 군을 통제한다는 문민통제 시대에 군 출신 인사를 국방장관에 앉히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강건작 예비역 중장은 최근 펴낸 저서 '강군의 조건'에서 순수 민간인 출신으로 국방장관을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창군 이래 이승만 정부(3명)와 장면 내각(2명) 때까지는 군 경력이 없는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이 5명이나 있었다. 국방부 대변인 출신의 부승찬 민주당 의원은 예비역 장성 출신을 국방장관에 임명할 경우 전역 후 최소 10년이 지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유럽 같은 문민통제 선진국에서는 군경력이 없는 민간인이나 여성들도 국방장관을 한 지 오래다. 이번이야말로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실히 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그 출발은 민간인 국방장관 임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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