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충돌…"벽 세우면 기독교인 아냐" vs "종교 지도자의 수치"
바티칸서 2017년 첫 만남 때 교황, 트럼프에 기후위기 서적 선물하기도
교황, 작년 美 대선서 트럼프-해리스 싸잡아 비판…"둘 다 생명에 반해"
(워싱턴=연합뉴스) 박성민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선종하면서 그의 생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빚어온 첨예한 갈등과 반목이 거듭 주목받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아웃사이더 이미지로 가톨릭교회와 미국 정치를 재편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두드러진 충돌로 귀결됐다"고 짚었다.
우선 두 사람은 거의 공통점이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의 상징인 빨간 신발과 화려한 관저를 거부하고 바티칸 시국의 공동숙소에서 검소하게 살면서 종교적 청빈함을 추구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이름을 브랜드로 삼고 뉴욕의 고층 빌딩부터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까지 그가 손대는 거의 모든 것을 금빛 광채로 감쌌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갈리는 삶의 방식을 넘어서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순위와 세계관은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이는 공개적 충돌로 이어졌다.
가장 크게 갈등을 빚은 이슈는 이민 문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를 미국 내 범죄, 경제 침체, 테러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공약으로 2차례 백악관에 입성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후 첫 방문지로 그해 7월 유럽으로 가려는 북아프리카 지역 난민들이 보트를 타고 몰려드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을 선택하는 등 기독교의 사랑이 이민자에 대한 자비로운 보살핌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첫 전면 충돌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권을 거머쥔 2016년 미국 대선 때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해 2월 멕시코 방문 도중 미국과의 접경지역인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20만명이 참석한 대규모 미사를 집전했고, 이를 두고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은 아주 정치적인 인간"이라고 쏘아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후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트럼프에 대한 견해를 묻자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만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건 간에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종교 지도자가 어떤 사람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수치"라고 받아친 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IS)를 거론하며 "ISIS가 노리는 궁극적 전리품인 바티칸이 만약 공격받게 되면 교황은 그제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으면 하고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이민정책을 공개 비판했다.
2019년에는 멕시코 방송 '텔레비사'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국경 장벽 건설에 대해 "벽을 쌓음으로써 영토를 보호하려는 새로운 풍조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베를린 장벽이 많은 골칫거리와 고통을 초래한 것을 알고 있다"며 "자신이 세운 벽에 포로가 될 것"이라고 직격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입국한 부모와 미성년 자녀를 격리하는 정책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선 "아동을 부모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기독교인들은 이런 잔인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올해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취임일에 1호 행정명령으로 불법 이민자 추방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들이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추방이 현실이 되자 2월 미국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의 중대한 위기"라며 "결국 나쁜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7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취임 후 첫 순방을 나선 5월 24일 바티칸 사도궁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한 것이다.
NYT는 "(당시) 사진들은 빠르게 퍼졌다. 나란히 서서 대통령은 환하게 웃었지만 교황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위기론을 부인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황청이 2015년 발행한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관한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선물했다.
두 사람의 갈등과 충돌은 현재 미국의 야당인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계가 매우 돈독했기에 더욱 도드라진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교회와 정치 관계 전문가인 미국 시카고 가톨릭신학연합(CTU) 베르나딘 센터의 스티븐 밀리스 센터장은 "트럼프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바마, 바이든과 친했기 때문에 적처럼 보였다"며 "우리가 사적 긴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매우 공개적으로 명확히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다만, 지난해 대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만 일방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다.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이 후보가 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리스 전 부통령에 대해선 '낙태권 수호'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반이민 정책'을 문제 삼아 두 후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대선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9월 13일 "이민자를 쫓아내는 사람이든, 아기를 죽이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둘 다 생명에 반한다"며 "유권자들은 덜 악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min22@yna.co.kr
[https://youtu.be/BktfGc7zLFQ]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