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째 성장률 0.1% 이하 머물러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최근 30년간 한국경제가 겪은 중대 위기는 대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정도가 꼽힌다. 3번의 위기 모두 대내외에서 발생한 충격이 경제위기로 이어진 경우다. 충격의 실체나 위기 발생의 원인을 어느 정도 규명할 수 있었고 그래서 회복도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경제는 자체적인 기초체력 저하에다 내외부 충격이 겹치면서 성장이 사실상 멈춰선 상태여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9%로 급락했지만 1999년엔 11.6%까지 반등했다. 분기별로는 1997년 4분기 -0.6%에 이어 1998년 1분기 -6.7%, 2분기 -0.8% 등 3개 분기 동안 역성장했지만 3분기엔 2%로 회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2008년 4분기 성장률은 -3.4%, 2009년 1분기 0.3%로 부진했지만 2분기엔 1.4%로 올라섰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도 1분기(-1.3%)와 2분기(-2.7%)가 역성장했지만 3분기엔 2.2%로 회복했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질 GDP(속보치)는 작년 4분기보다 0.2% 감소했다. 최근 분기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1.3%에서 2분기 -0.2%로 떨어졌고 3분기와 4분기 0.1%에 그쳤다가 올 1분기에 다시 마이너스로 내려앉았다. 작년 2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으로 성장률이 0.1% 이하에 그치며 성장이 사실상 멈춰 선 것이다. 4개 분기 연속으로 성장률이 0.1% 이하에 머문 것은 과거 경제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올 1분기 성장률은 한은의 전망치 0.2%보다 무려 0.4%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1분기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부과 영향이 본격화하기 전이므로 앞으로 관세의 충격이 본격화하고 미중 무역 갈등이 우리 수출에 타격을 주면 성장률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을 1.5%로 예상했었으나 1% 성장도 장담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IMF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0%로 내렸고 해외 IB(투자은행) 사이에선 연간 성장률이 0.6∼0.7%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늘었다.
이런 성적표는 저출생 고령화와 수요 부진, 성장잠재력 약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비상계엄 사태, 제주항공 참사, 대형산불 등 각종 악재가 겹친 탓이다. 더구나 미국발 관세 충격은 올 1분기 이후 본격적인 영향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크다. 24일 시작된 한미 2+2 통상협의의 결과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지만, 그와 별도로 가라앉는 경기를 떠받칠 비상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 정부가 제출한 12조2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신속하게 집행하고 한은도 금리를 내리는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살려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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