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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리뷰] '파과' 이혜영 보유국에 산다는 것(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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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잘 갈린 칼날은 섬세하고 예리하게 짜인 범위를 알맞게 잘라내지만 무뎌진 칼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짓이겨져 더 큰 고통을 남긴다. 영화 '파과'도 그렇다. '대모' 이혜영은 무뎌진 칼이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칼이다. 처절하고 치열하게 한계를 도전하는 63세 '명품 배우'의 피땀눈물이 고귀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혜영 보유국에 산다는 것이란 이런 것이다.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신성방역에서 40년간 활동 중인 레전드 킬러와 그를 쫓는 미스터리한 킬러의 숨 막히는 핏빛 대결을 그린 액션 영화 '파과'(민규동 감독, 수필름 제작)가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국내 첫 공개됐다.

'파과'는 한국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여성 서사라는 호평을 이끈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게 된 레전드 킬러가 소멸을 앞두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애환의 판타지를 다룬 '파과'는 소설의 강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대모' 이혜영에 이입해 마침내 발 디딘 이야기로 관객을 찾았다.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인간에 대한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섬세하고 세밀한 연출 장기를 '파과'에 마음껏 쏟아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99) '내 아내의 모든 것'(12) '허스토리'(18) 등 공포, 스릴러, 로맨스, 휴먼 등 장르 편식 없는 다양한 장르로 쌓은 내공을 '파과'에 갈아 넣어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영화만의 보는 맛을 잘 살려냈다. 기존에 충무로에서 늘상 봐왔던 복수로 시작된 막무가내식 액션이 아닌, 농밀한 서사와 드라마가 밑바탕이 된 '감성 액션'의 신기원을 연 민규동 감독이다.

민규동 감독이 깔아 놓은 주단에 멋들어진 춤사위를 펼쳐낸 '명품 배우' 이혜영의 활약도 압도적이다. 모든 킬러가 추앙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전설의 킬러 조각으로 변신한 이혜영은 그야말로 '대체 불가' 한 열연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영겁의 세월이 담긴 눈빛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조각이 살아온 세월을 펼쳐놨고 검술, 총술, 와이어, 그리고 맨몸 액션까지 액션 종합선물세트를 완벽히 소화한 그의 액팅은 '레전드' 조각의 존재감을 더욱 눈부시게 만들었다. 효과음 범벅된 둔탁한 마동석의 원펀치 보다 혼신의 힘으로 처절하게 날리는 이혜영의 핵펀치가 더 강렬하게 파고드는 '파과'다. 리암 니슨 못지않은 액션 감각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혜영과 대립각을 세운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 역의 김성철 또한 일당백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배우 이혜영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김성철은 얼음장 같은 이혜영과 전혀 다른 들끓는 활화산 같은 매력으로 '파과'를 보좌했다. 이밖에 이혜영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손톱 역의 신시아, 조각이 지켜야 할 대상이 된 강선생 역의 연우진도 적절한 균형을 맞추며 극의 재미를 높였다.

'파과'는 몇 년째 위기를 면치 못하는 극장가에 일침을 날릴, 신선한 충격이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성품처럼 뻔하고 고루한 장르물에 신물이 난 관객에게는 확실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극장에서 볼만한 장르 영화다.

충무로에서 기피하는 여성 원톱 서사, 게다가 여주인공이 63세 중견 배우라는 사실 만으로 개봉까지 험난한 여정을 겪었을 '파과'. 그 어려운 걸 끝내 해내고 만 민규동 감독과 이혜영의 눈물겨운 진심이 봄 극장가 관객에게 닿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원래 멍들고 흠집 난 '파과(破果)'가 더 달콤한 법이다.

'파과'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