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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00일] '관세전선'서 포성 울린 美中 전략경쟁 본격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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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기 집권 취임 후 쏘아 올린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도 중국과 관세를 통한 무역 전쟁을 벌인 바 있어 재집권할 경우 다시 대중(對中) 압박 수단으로 관세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됐다.
다만 이번에는 그 시점이 빠르고 충돌 수위 역시 매우 높게 흐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거듭된 관세 폭탄에 중국이 물러서지 않고 속속 맞대응에 나서면서 양측이 대응과 보복을 계속 주고받으며 상황은 악화하는 형국이다.
양측 모두 "협상의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번에 굴복할 경우 양국 간 전략 경쟁에서 주저앉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양보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이번 관세 전쟁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글로벌 패권 다툼의 1라운드 격이어서, 이번 분쟁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더라도 양국간 전쟁 같은 경쟁과 상호견제는 최첨단 기술이나 안보 분야 등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 '145% vs 125%' 전례 없는 관세율에 美中 경제관계 파탄 직전
이번 관세 전쟁은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보름여만인 지난 2월 4일 모든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중국산 펜타닐(좀비마약) 원료가 멕시코와 캐나다로 흘러 들어간 뒤 미국 국경을 건너 유입되면서 대규모 공중보건 위기를 초래했다는 게 대중(對中) 관세의 배경이었다.
중국은 곧바로 같은 달 10일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15%, 원유·농기계·대배기량 자동차·픽업트럭에 10% 등 보복 관세를 물리면서 대응에 나섰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3월 4일부터 10%를 더해 대중 관세율을 20%로 높였고, 중국 역시 엿새 뒤인 10일부터 미국산 농·축산물 740개 품목에 추가로 10% 또는 15%의 관세를 부과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탐색전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지칭한 이달 2일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대중 관세율을 34%로 못 박은 이후 양국은 더욱 강력한 조처를 주고받았다.
중국은 이틀 후(4일) 미국산 수입품에 똑같이 34%의 맞불 관세로 맞섰다. 여기에 미국 군수기업 16곳에 대한 금수조치, 희토류 수출 통제 등 전방위 무역 보복에 나섰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대중 관세를 84%로 인상했고, 중국도 이튿날 84%의 대미 보복관세로 비례 대응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상호관세 발효 13시간만에 중국을 제외한 무역 상대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면서 대중 상호관세는 125%로 끌어올렸다. 중국산 펜타닐 원료를 문제 삼아 10%씩 2차례 부과한 관세를 더해 대중 관세는 145%로 높아졌다.
전 세계를 상대로 했던 관세 폭탄의 타깃에 중국만 남겨놓은 것이다.
중국도 지난 11일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84%에서 125%로 올리는 관세 조정 고시를 발표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에 미국은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800달러 미만(약 115만원) 소액 소포에 대한 관세율을 5월 2일부터 120%로 올리기로 하는 등 양측은 치고받기식 충돌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방식의 보복·맞불 조처로 서로에 대한 관세율이 전례 없이 치솟으면서 양국 간 정상적인 교역이 붕괴하고 상품무역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는 수준의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 美의 잇단 유화 제스처에 中도 일부 관세 철회…협상 물꼬 트나
세계 경제 규모 1, 2위를 차지하는 미·중이 이처럼 통상 문제를 둘러싸고 양보 없이 대충돌한 상황은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전략 경쟁에서 비롯됐다.
자유무역 체제하에서 양국 간 긴밀히 연계돼 온 경제적 관계가 사실상 파탄 나고 양국 경제 역시 적지 않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양국 모두 장차 국가적 명운이 걸린 패권 다툼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먼저 관세전쟁을 시작한 미국이 중국보다 좀 더 조급해하는 분위기다.
중국에 대해 강경 일변도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유화 제스처를 내놓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에 대해 "매우 높다. (협상을 하게 되면) 그 정도로 높게 있지 않을 것이며 상당히 내려갈 것"(22일), "향후 2∼3주 안에 관세율을 (새로) 정할 것이며, 중국이 포함될 수 있다"(23일) 등으로 하향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미·중 간 무역 협상에 대한 가시적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23일 "중국과 매일 협상하고 있다"고 한 데 이어 24일 "오늘 오전 (중국과) 회의했다. 우리는 중국과 만남을 가져왔다"고 말했고, 25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 여부에 대해 "여러 차례" 대화했다고 전하면서 "(대화 내용은) 적절한 시점에 알려주겠다.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미국 경제의 강력한 경고음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끝 간 데 없이 치닫는 동안 뉴욕 증시의 폭락과 국채 금리 급등(국채 가격 급락), 달러화 가치 하락 등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긍정적 신호를 보내면서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협상을 한 적이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대놓고 부인했다.
궈자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4일 매일 협상 중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가짜뉴스"라고 깎아내리면서 "중미 양측은 관세 문제에 대해 협의 또는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으며, 합의 도달은 말할 것도 없다"고 밝혔다.
궈 대변인은 이튿날인 24일에도 "중미 양국은 결코 관세 문제에 관해 협상이나 담판을 진행한 바 없다. 미국은 이목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전면 부인했다.

◇ 관세 타결돼도 반도체·해운 등 갈등 요인 산적
중국이 이처럼 미국과 달리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번 관세 전쟁에서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중국은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여러 차례 떨어지는 와중에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면서도 "싸운다면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결전의 의지를 보여왔으며, 세계 다른 나라와는 달리 그때그때 미국의 관세에 비례한 맞불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는 중국이 그만큼 대응 시나리오를 철저히 준비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인 지난 2018년 1차 무역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의 공세에 대해 어느 정도 면역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데다가 7년이 지난 현재의 중국은 경제·기술·군사 등 핵심 분야에서 미국에 대적할 만한 상당한 수준의 발전을 이뤄낸 점도 중국이 자신감을 보이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자부해온 생성형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 스타트업이 미국의 오픈AI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챗GPT에 필적하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딥시크'를 내놓아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아울러 중국은 앞으로 미국과의 관세전쟁이 격화하고 미국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경우 이에 맞설 수 있는 상당한 '무기'를 확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의 대응카드로는 위안화 평가 절하, 희토류에 대한 수출 통제 강화, 보유 중인 미국 국채 대량 매각 등이 거론된다.
다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 역시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심화할수록 자국 경제 역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시점에는 미국과의 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어 주목된다.
일례로 중국은 최근 당국의 공식 발표 없이 슬그머니 메모리칩을 제외한 미국산 반도체 8종에 대한 관세 125%를 철회했다고 미 CNN 방송과 중국 매체들이 지난 25일 보도했다.
이를 두고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던 미·중 양국이 관세 협상의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양국 간 물밑 협상이 이뤄지고, 2018년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나 협상을 마무리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더라도 양국의 전략경쟁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품목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고 있어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는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한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해운·조선 산업 재편을 위해 오는 10월부터 중국 해운사,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 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 운반선 등에 미국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중국 당국과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뒤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해당 지역에서의 미·중의 전략 경쟁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으로 인해 미국과 중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min22@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