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알고보니 진짜 승자는 따로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8년 만에 '한 경기 4홈런'을 친 타자가 또 탄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19번째로 탄생한 희귀 기록이다. 선발 투수가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퍼펙트 게임(9이닝 무피안타, 무4사구, 무출루 승리)'보다 나오기 어려운 진기록이다. 퍼펙트 게임은 여태까지 24번 나왔다.
이렇게 어려운 역대통산 19번째 '한 경기 4홈런' 기록을 세운 타자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3루수 에우헤니오 수아레스(33)였다.
수아레스는 27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2025 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 6번 3루수로 선발 출장해 2회와 4회, 6회, 9회에 걸쳐 4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첫 홈런은 0-2로 뒤진 2회말 2사 후. 애틀랜타 선발 그랜트 홈스를 만난 수아레스는 좌중월 솔로홈런을 날렸다. 이어 수아레스는 3-2로 앞선 4회말 1사 1루 때 또 좌중월 2점 홈런을 쳤다. 6회말2사 후에도 중월 솔로홈런을 쳤다. 상대는 모두 홈스였다.
기세를 탄 수아레스는 6-7로 뒤진 9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애틀랜타 마무리 라이셀 이글레시아스를 상대로 동점 홈런을 치며 '한 경기 4홈런'이라는 진기록을 완성했다. 이는 지난 2017년 역시 애리조나 소속이던 J.D. 마르티네스 이후 8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흐름이 이어지고, '퍼펙트게임'보다 희귀한 기록이 탄생했다면, 애리조나가 승리했어야 응당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역시 야구는 허를 찌르는 묘미가 있다. 대반전이 나왔다. 결국 마지막에 웃은 쪽은 애리조나가 아니라 홈런을 연거푸 얻어맞은 애틀랜타 쪽이었다. 애리조나는 9회말 수아레스의 동점 홈런 이후 끝내기에 실패해 결국 승부가 연장으로 돌입했다.
이어진 연장 10회초 애틀랜타가 곧바로 결승점을 뽑았다. 1사 3루 상황에 애리조나 투수 저스틴 마르티네스의 폭투가 나오며 3루 주자 올슨이 홈을 밟아 8-7을 만들었다. 이어 애틀랜타는 연장 10회말 1사 3루 위기에서 두 타자를 연속 범타처리하며 재역전승으로 경기를 끝냈다.
이로 인해 애틀랜타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세 번째이자 20세기 이후 두 번째로 나온 대기록, 바로 '한 타자에게 한 경기 4홈런을 맞고 이긴 팀'으로 기록됐다.
반면 수아레스 역시 129년 역사에 단 세 번만 나온 '한 경기 4홈런을 치고 경기에 패한 타자'라는 기록을 떠안게 됐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애틀랜타는 비록 수아레스에게 4개의 홈런을 얻어맞았지만, 끝내 승리한 팀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며 애틀랜타의 '반전 대기록'에 관해 보도했다.
현대 메이저리그에 들어서 애틀랜타처럼 '한 타자에게 한 경기에 4홈런 맞고 이긴 팀'은 몬트리올 엑스포스(워싱턴 내셔널스 전신)다. 1986년 7월 6일에 밥 호너에게 4홈런을 허용했지만, 끝내 11대8로 승리했다. 하필 이때 호너의 소속팀이자 대기록의 희생양이 바로 애틀랜타였다.
이보다 더 기록을 뒤로 돌리면 무려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메이저리그 역사라고 부르기에도 살짝 애매한 1896년 7월 13일 시카고 콜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최초의 한 경기 4홈런 타자'가 탄생했다. 바로 필라델피아 소속 에드 델라한티였다.
19세기 최고의 타자 중 한명으로 불리는 델라한티는 이날 시카고와의 경기에서 4개의 홈런을 쳤다. 하지만 최초의 기록은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날 필라델피아는 결국 8대9로 졌기 때문이다. 결국 '한 경기 4홈런 타자'의 출발점은 패배와 맞닿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수아레스는 유구한 전통을 충실히 따른 타자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