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유형재의 새록새록] 어둠이 내려앉자 새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by


매의 생동감 넘치는 장다리물떼새 사냥…가공할 공격에 목숨 잃어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백두대간으로 해가 넘어가 어둑한 저녁 강원 강릉의 한 하천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새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노을조차 사라져 빛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시간.
잠을 자기 전 활발히 먹이 활동을 하던 10여 마리의 장다리물떼새와 넓적부리, 쇠오리, 원앙 등이 갑자기 서로 큰 소리로 경계음을 냈다.
한가로이 하천에서 먹이활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저녁을 보내던 새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았고 일부는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어둠이 내리자 사냥의 명수 매가 스텔스처럼 나타난 것이다.
매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보호받는 몸길이 34∼58cm, 날개 편 길이 80∼120cm 이르는 대표적 맹금류다.
소리 없이 나타난 매에 놀라 10여 마리의 장다리물떼새도 다른 새들처럼 제각기 흩어졌다.
각자도생에 나선 것이다.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매는 사냥 목표물을 이미 정한 듯했다.
어스름한 시간 눈에 잘 띄지 않는 잿빛의 매는 눈으로 좇아가기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목표물로 돌진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내세운 첫 공격으로 털이 몇 개 날렸으나 목표물인 장다리물떼새는 아직 살아 있었다.
또다시 공중을 한 바퀴 돈 매는 목표물을 향해 수직으로, 혹은 수평으로 빠르게 방향을 바꿔가며 최후의 일격을 노렸다.
3번째 도전에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장다리물떼새 목덜미의 털을 한 움큼 뽑아냈고, 4번째는 이미 목숨을 다한 것으로 보이는 사냥감이 매의 발톱에 채여 물 위로 한 바퀴 크게 나뒹굴었다.
그러기를 5차례.
점점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도 숨 막히는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매는 마침내 죽은 듯 물 위에 떠 있던 장다리물떼새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재빠르게 낚아채며 사냥을 마무리했다.
매의 발톱에 낚인 장다리물떼새의 상징인 기다란 핑크빛 다리가 하늘로 향했다.
매가 사냥감을 잡아간 곳에 물방울이 크게 튀어 올랐다.
매는 최고의 시력을 갖춘 가장 빠른 새로 알려져 있다.
자료에는 '매의 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보다 8배나 멀리 볼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급강하 시 속도로는 무려 최대 389km/h라는 경이로운 속도로 내리꽂아 매를 피할 동물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천에서 한가로이 저녁 시간을 즐기던 장다리물떼새는 매의 접근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가공할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매는 아직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한 장다리물떼새와 쇠오리 등이 지켜보는 용맹함을 과시하듯 하천 바닥에서 사냥감을 먹으려 시도했다.
그러다 부모와 함께 산책에 나선 아이들의 큰소리에 놀라 사냥감을 달고 하류 쪽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동료를 잃은 다른 장다리물떼새들은 그곳에 없었고, 하천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했다.

yoo21@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