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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뉴] 처자식도 탈탈 터는 치사해진 권력, 이재명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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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의 사생활·가족은 금기, 박정희 "벨트 아래는 노터치"
이명박 때 盧 일가 망신주기 수사로 정치보복 금도 무너져
이재명은 아내에 아들까지 수모 겪어…악순환 해소는 '법대로'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과거 정치보복의 악순환 속에서도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 사전에 없는 여의도 용어인 '금도'(禁度)라는 게 있었다. 바로 정적의 사생활과 가족이었다.

박정희는 18년간 철권 통치를 하면서도 정적의 사적 영역에 대해선 철저하게 레드라인을 지켰다. 김영삼·김대중의 사생활을 파헤쳐 정치적으로 매장해버리자고 측근들이 건의할 때마다 "남자의 벨트 아래는 건드리는 게 아냐"라고 호통치며 유혹을 물리쳤다.
박정희를 시해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도 보복의 마지막 선을 지켰다. 10·26 내란 재판에서 '청와대 채홍사'로 불린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가 박정희의 여자 문제에 대해 진술하려 하자 버럭 화내며 "야, 그 얘긴 하지마!"라고 제지했다.
박정희 사후에도 '전통'은 이어졌다. 집권세력은 검찰을 동원해 전 정권에 보복의 칼날을 휘두르면서도 그들의 가족만큼은 보호했다.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과 김대중의 세 아들이 감옥에 가긴 했지만 현직 대통령인 아버지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가족과 가신을 검찰에 내주면서까지 정치보복과 선을 그으려 했다. 김대중은 자신을 5·18 내란수괴로 몰아 사지로 몰아넣었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용서하고 때마다 부부 동반으로 초청해 조언을 구했다. 노무현은 거대 야권의 탄핵 공세에 눌려 김대중의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했지만, 수사는 통치권의 영역에 국한했다.

보복의 금도가 무너진 것은 노무현의 후임인 이명박 정권 때였다. 광우병 촛불사태로 정권이 수세에 놓이자 검찰과 국정원은 처와 자식까지 탈탈 터는 것도 모자라 '논두렁 시계' 같은 근거 없는 의혹을 언론에 흘리는 망신주기 수사를 이어가 전임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았다.
대권 재수에 나선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정치보복을 "시간낭비"라고 거듭 일축하며 국민통합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권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치사하다"고 할 정도로 이 후보의 처와 자식까지 탈탈 털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 후보는 근거 없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적잖은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정치 지도자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라 가슴 속 깊이 분노가 쌓였을 거라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파상 공세에 나설 게 불 보듯 뻔하다. 이 후보의 피해의식과 맞물려 정치보복이 자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언론이 정치보복 가능성을 물을 때마다 손사래 치며 "정상적 사법시스템"에 맡겨두겠다고 했지만, 결국 허언에 그쳤다. 이 후보는 요즘 언론으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 이 후보는 이에 "윤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에 대해 정의한 걸 참고하라"고 답하고 있는데, 에둘러서 말하기 보다 "법대로만 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게 국민에게 진정성을 줄 것 같다.
jah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