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선출하거나 대법원장이 지명한 헌법재판관을 7일간 임명하지 않으면 임명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은, 헌법상 대통령의 임명권을 형해화시키고 삼권 분립에도 어긋날 우려가 큽니다."
29일 현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제19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이라며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홈페이지 알림ㆍ소식 보도자료 목록에 실린 내용 중 일부입니다.
'형해화'(形骸化. 형상 형 뼈 해 될 화)라는 낱말이 보입니다. 어렵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따로 올라가 있지는 않네요. 시민들이 참여하는 일종의 열린 사전 우리말샘에만 있습니다. '형식만 남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됨.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이라고 뜻을 풀었네요.
형해는 사전 올림말에 있습니다. '사람의 몸과 뼈'가 첫째 뜻이지만, 형해화의 형해는 내용이 없는 뼈대라는 뜻으로 형식뿐이고 가치나 의의가 없는 것을 이르는 말이지요. 셋째 뜻이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형해화를 동사처럼 쓰려했어도 '형해화하다'를 활용하면 될 뻔했습니다.
쉬운 대안 표현을 나열해 봅니다. 000를 유명무실하게 만들다 / 000를 가치 없게(무가치하게) - / 000를 의미 없게(무의미하게) - / 000를 쓸모없게(무용하게) - ……. 한자어 형해화와 뜻이 100% 같지는 않은 듯도 합니다. 그러나 임명권이 허울만 남게 된다는 주장, 바로 그 본질적 의미는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별 문제의식 없이 쓰는 [모두발언]도 되도록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모두(冒頭)는 '말이나 글의 첫머리'라고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회의나 연설에서 시작할 때 하는 말이라면 시작발언, 개회발언, 서두발언, 머리발언, 첫머리 발언, 들머리 발언, 첫 발언 등이 대체어로 어떨지요?
얼마 전까지 국민들은 꾸욱 참아야 했습니다. '내' 표로 만든 국회가 고른 헌법재판관을 대통령 권한대행들이 임명하지 않는 행태를 말입니다. 정통성 있는 국민 직선 권력인 입법부의 헌법재판관 선출권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행들이 임명권을 내세워 의미 없게 만들었던 거지요. 형해화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이렇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말하며 시민들 마음에서 더 멀어져 가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민심을 천심으로 받들며 쉬운 말로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지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홈페이지, 보도자료 '[모두발언] 제19회 국무회의 모두발언' - https://www.opm.go.kr/opm/news/press-release.do?mode=view&articleNo=158973&article.offset=0&articleLimit=10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3.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모두 발언'이 뭘까요? (입력 2023.10.23 00:02)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353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