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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주심이 자신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오심으로 규정짓고 번복했다. 규정에 따른 명백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사상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그 시작은 SSG 김광현이었다. 김광현은 1회말 1사 KT 김상수의 타석에서 심판진과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언뜻 보기에도 불만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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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선두타자 추신수가 안타로 출루하고, 무사 1루 최정의 타석.
양팀 공히 에이스인 김광현-쿠에바스가 출격한 경기다. 승부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ABS(자동볼판정 시스템)에 오류가 거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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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추적은 됐다. 다만 2구부터 5구까지의 볼판정이 문동균 주심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정종수 3루심의 수신기는 정상 작동했다. 1구1구, 주심이 3루심의 수신호를 주시하며 콜을 하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6구째부터 ABS가 제대로 작동했다. 최정이 볼넷으로 출루하며 무사 1,2루가 됐다.
다음 타자 에레디아의 1구 때 또 오류가 났다. 주심, 3루심 모두 판정을 전달받지 못했다. 두 심판들은 장비를 다시 체크했다.
2구째는 131㎞ 체인지업. 또 ABS 신호가 울리지 않았다. 심판은 결국 마이크를 잡았다. "ABS가 작동되지 않아 심판 자체 판정을 하겠다. 에레디아의 2구째는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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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심은 투구 추적이 정상적으로 이뤄진 걸 몰랐다. 더그아웃에 비치된 ABS 태블릿 PC에는 문제의 공이 볼로 표시됐다. 이숭용 SSG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선언된 볼 판정을 뒤집으려는 심판진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6회 시작 시점에 이미 80구를 넘어선 쿠에바스의 모습도 눈에 밟혔다. 거듭된 경기 지연 상황에 리듬이 완전히 끊겼다. 결국 심판진은 볼로 정정하는 선택을 했다.
KBO 관계자는 "주심이 ABS 판독에 따르는게 정확한 절차다. 원칙적으로는 SSG 측이 항의하기 전에 ABS의 추적을 확인한 KBO 운영직원이 뒤늦게 콜이 이뤄졌음을 전달했어야한다"며 현장의 운영 미숙을 인정했다.
이어 "규정상 '투수가 다음 공을 던지기 전', 이닝 종료시 '20초 전'에 항의가 이뤄지면 ABS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따르도록 돼있다. 주심의 (번복)선택은 옳았다, 혼란 최소화를 위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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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디아의 사구는 이날 주심이 '자체판정'한 유일한 1구다. 다음투수 성재헌부터 ABS가 정상화됐다.
8시10분부터 8시21분까지, 약 11분간 수원 구장에 몰아친 대혼란이었다. SSG는 한유섬-박성한-이지영이 3연속 1루 땅볼에 그치면서 점수를 뽑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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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지명타자로 나선 KT 장성우는 "더운 날씨 속에 우리 수비 상황이라 투수, 야수들이 힘들었을 것 같다. 쿠에바스는 이미 80구를 넘긴 상황에서 계속 템포가 끊겨 힘들었을 것"이라며 안쓰러워했다.
경기 운영기기의 거듭된 오류에 5이닝 1실점(무자책)으로 역투하던 쿠에바스만 피해자가 됐다. 서로를 배려한 쿠에바스와 에레디아의 아름다운 장면만 남았다.
수원=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