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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아동학대, 외면해서 안될 현실"…유선, 엄마이자 배우로서의 책임감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9-05-07 13:03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아이의 엄마로서 아동학대의 가해자를 연기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제 연기와 영화를 통해 아동 학대 현실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어요. 고통스럽다고 외면하면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배우 유선에게 '어린 의뢰인'은 단순한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특별한 작품이었다.

오직 출세만을 바라던 변호사가 7살 친동생을 죽였다고 자백한 10살 소녀를 만나 마주하게 된 진실에 관한 실화 바탕의 영화 '어린 의뢰인'(장규성 감독, 이스트드림시노펙스㈜ 제작). 극중 두 얼굴의 새엄마 지숙 역의 유선이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가진 라운드 인터뷰에서 개봉을 앞둔 소감과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4인용 식탁'(2003), '검은 집'(2007), '이끼'(2010), '글러브'(2011), '돈 크라이 마미'(2012), '채비'(2017) 등 영화와 KBS '솔약국집 아들들', MBC '마의', tvN '크리미널 마인드',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등 드라마까지 극장과 TV를 오가며 다채로운 연기력과 캐릭터를 선보여온 유선. 오랜 기간 꾸준히 국내외 아동 지원 부문의 대외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2017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던 그가 2013년 전 국민을 분노케 했던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는 영화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의미있는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그가 연기하는 지숙은 재혼으로 인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친 엄마를 그리워하는 10살 다빈과 7살 민준 남매의 엄마가 된 인물. 처음에는 상냥하고 친절한 엄마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고 폭언을 내뱉는가 하면 폭행까지 가하는 두 얼굴의 엄마다. 극심한 학대로 인해 어린 민준을 죽음으로까지 내몰면서도 어린 딸 다빈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파렴치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
이날 유선은 가장 먼저 "모든 영화가 당시의 열정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찍는데, 영화에 따라서 아쉬운 작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정말 모두의 진심이 잘 담긴 것 같고 애초에 의도했던 목소리들도 잘 담긴 것 같다. 사전 시사를 통해 먼저 만난 관객분들이 주변에 권하고 싶은 영화라고 피드백으로 해주셨다. 그래서 굉장히 뭉클하면서도 감사하더라"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앞선 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한 유선은 "'학대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마음으로 힘드셨을 것 같다'라는 말을 기자님이 해주시는데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눈물이 확 나더라. 촬영하면서도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짊어져야 되는 숙제 아닌가"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려면서 "그 어떤 작품 보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시사회 끝나고 주변 분들이 제 손을 잡고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말씀을 해주시더라. 제 역할이 워낙에 세니까 오히려 반감을 가지시지 않을까 했는데 과정을 이해해주시더라. 아이의 엄마로서 그런 연기를 한다는게 힘들다는 걸 이해해주시더라"고 설명했다.

아이의 엄마이기에 아동을 학대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더욱 고통스러웠다는 유선은 "사실 시나리오를 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할 때 상상이 되는 역할보다는 잘 상상하기 힘든 역할을 택하는 편이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하지만 감독님과 만나고 캐릭터를 준비하고 나서부터 고통이 밀려왔다.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역할이구나 싶었다. 아이 엄마로서 하는게 더욱 쉽지 않았더라. 처음에 대본을 보고 신을 준비하는 과정이 내가 지숙이 되어야 하는데 자꾸 아이들에게 집중이 되더라. 고통을 받는 아이에 집중이 되니까 읽다가 책장을 덮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깊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냥 지숙을 이해해보자라고 생각했다"는 유선. "감독님은 단 한 구석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일말의 동정심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하지만 저는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의 인생을 유추해 나가야 했다"며 "지숙은 분노조절장애가 있고 보험 사기를 저질렀던 인물이지 않나. 굉장히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인데, 분노조절장애에 대해 알아봤더니 대부분 그런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고 하더라. 부정적 가정환경에서 살다보면 습관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숙 또한 학대의 피해자로 생각하고 결핍이 있는 인물이라고 설정했다."고 덧붙였다.

쉽지 않은 영화 '어린 의뢰인'. 그럼에도 유선은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처음에 대본을 딱 봤을 때는 기다렸던 영화가 드디어 내게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연 유선은 "'미쓰백'이 나오기 전이라서 아동학대를 이렇게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이 없었던 때다. 아이에게 얼마나 부모의 사랑이 중요한지 엄마로서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 의뢰인' 출연 전에도 아동학대 홍보대사로도 활동한 그는 "홍보대사 활동을 하면서 친 부모에 대한 아동학대가 70%가 넘는다는 걸 언론을 통해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을 훈육한다는 이유만으로 연약한 아이에게 끔찍한 행동을 하는 부모들이 정말 많더라. 그런 사실들을 알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현실을 일깨워주고 또 문제의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가 가지고 있는 배우라는 직업과 능력으로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동학대 홍보대사를 하면서 또 이런 영화를 통해 그런 목소리를 힘있게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
그러면서 "신기하게 부모가 되면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 한명 한명 아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제가 비로서 엄마가 돼서 아이의 인격체와 인권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앞서 '돈 크라이 마미'에서는 피해자, 그리고 '어린 의뢰인'을 통해 가해자를 연기하게 된 유선은 두 영화를 비교했다. "'돈 크라이 마미' 촬영 할 때는 아이가 없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을 한 아이의 엄마 역이었다. 그때의 그 고통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었다. 아이가 없을 때 찍은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작품은 가해자인데 상대가 또 어린 아이지 않나. 그렇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두 작품 다 정말 힘들었다. 그 대신 이번 작품에서는 '힘들다'라는 감정을 넘어서 책임감이 무거워서 부담이 크기도 했다. 내가 연기를 더 잘해야지 문제를 명확히 상기시킬 수 있으니까 책임감에 대해 정말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한 유선은 '어린 의뢰인'을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법적인 변화까지 이끌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장애인학교 교직원의 장애인 성폭행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로 인해 '도가니법'이 제정됐던 것을 떠올리며 "사실 저 또한 그런 것('도가니법' 제정)까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 어떤 시사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우리 나라가 아동학대에 대한 법이 가장 약하다고 하더라. 이 실제 사건도 가해자가 15년형을 받지 않았나. 피해자 분들이 너무 약한 형량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고 하더라. 15년형이면 피해 아동이 다 커서 출소하는거다. 외국에서는 최소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라고 하더라. 아이를 상대로하는 범죄는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법적 기준이 외국은 서있는데 우리나라는 부족한 것 같다"며 "제가 '돈 크라이 마미'를 했을 때도 청소년법이 굉장히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됐다. 가해자로 인해 피해자가 죽었는데 가해자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죄를 물지 않는거다. 그런 허술한 법이 아이들을 방심하게 만드는거다"고 전했다.

아동을 학대하는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인물은 연기한 유선. 캐릭터 연기로 인해 실제 감정과 삶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사실 연기를 하면 그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류의 감정을 계속 쓰니까"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다행이 집에 오면 힐링이 되는 우리 아이가 있으니까 영향을 덜 받았다. 그리고 제가 그때 드라마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를 함께 촬영했었다. 함께 촬영하느게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정서적인 측면과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좋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유선은 극중 호흡을 맞춘 이동휘에 대해 "굉장히 유쾌하고 밝고 개구진 친구일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굉장히 진지한 친구고 작품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는 친구더라. 진지하고 캐릭터를 그려낼 줄 아는 영민하고 매력있는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유선은 "우리 영화 관련 기사에 '내용만 봐도 가슴 아파서 영화를 못보겠다'라는 댓글을 봤다. 그런 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어떤 현실을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변화를 이끌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외면하는 수동적 태도 보다는 오히려 직면하고 우리가 처함 문제의 심각성을 활발히 공유해야 세상은 바뀐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편, '어린 의뢰인'은 '재밌는 영화'(2002), '선생 김봉두'(2003), '여선생VS여제자'(2004), '이장과 군수'(2007), '나는 와이로소이다'(2012) 등을 연출한 장규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동휘, 유선, 최명빈, 이주원, 고수희 등이 출연한다. 5월 22일 개봉.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이스트드림시노펙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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