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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칸 인터뷰] "수상? 김칫국 안 마셔요"…'령희' 연제광 감독, 新칸의 총아 탄생 (종합)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19-05-20 07:59



[칸(프랑스)=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제 인생 좌우명이 '일찍부터 김칫국 냄새도 맡지 말자'예요. 하하."

칸국제영화제의 학생 경쟁 부문으로 불리는 시네파운데이션에 한국 학생 대표로 공식 초청을 받은 연제광 감독(29). 그가 영화인들에겐 '꿈의 무대'인 칸영화제에 입성,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1946년 9월을 시작으로 올해 70회를 맞은 칸영화제는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로 불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축제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칸에서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각)부터 오는 25일까지 축제를 이어간다. 전 세계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또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자리로 영화인들에겐 '꿈의 무대'인 칸영화제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인 연제광 감독의 졸업 작품 '령희'가 학생 경쟁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령희'는 조선족 출신의 불법 체류자인 홍매(한지원)와 령희(이경화)의 이야기를 다룬 15분 분량의 단편영화다. 시골 공장에 갑자기 들이닥친 불법 체류 단속반을 피하려다 령희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이런 령희의 룸메이트인 홍매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령희의 장례라도 제대로 치러 달라며 공장 사장(현봉식)에게 읍소해보지만 모두 관심 밖의 일. 최소한의 권리도 지킬 수 없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15분의 짧은 시간에 압축, 묵직한 메시지와 여운을 전했다.

앞서 연제광 감독은 신입 사원이 못 먹는 홍어를 먹어가며 상사를 상대해야 했던 단편 '홍어'(16), 의처증 남편에게 시달린 아내가 남편의 살인을 청부하는 '종합보험'(16), 친척 집에 얹혀사는 재수생의 이야기를 다룬 '표류'(17), 그리고 '령희'까지 6편의 단편을 연출한 충무로의 루키다. 비열하고 잔인한 현실에 부딪힌 약자들의 좌절과 고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담히 그려내 왔다. '령희'는 이런 연제광 감독의 연출을 집약한 작품이다.


오는 22일 '령희' 공식 상영을 위해 지난 18일 칸영화제에 입성한 연제광 감독을 스포츠조선이 만났다. 전 세계 17편의 시네파운데이션 작품이 초청된 가운데 한국 감독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연제광 감독. 한예종 선배인 박영주 감독이 단편 '1킬로그램'으로 2016년 열린 제69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될 당시 서포트를 위해, 또 마켓 출품을 위해 비공식으로 칸영화제를 방문한 것에 이어 두 번째 칸영화제 방문이자 첫 번째 공식 초청이다. '령희'의 주연배우인 한지원, 이경화, 우상기, 한상길 촬영감독과 함께 칸영화제를 찾은 연제광 감독은 "칸에 왔지만 아직 얼떨떨하다"고 머쓱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칸영화제 공식 발표가 있기 전 개인 메일로 칸영화제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때 밥을 먹다 메일을 확인했는데 갑자기 밥이 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로 깜짝 놀랐다. 칸영화제 초청 소식에 너무 행복했다"며 "올해 칸영화제에 한예종 감독들의 작품이 수십편 출품을 도전했는데 내가 운이 좋아 대표로 오게 됐다. 어깨가 많이 무겁다. 2016년 선배인 박영주 감독과 함께 처음으로 칸영화제를 경험해봤다. 그때 '나도 언젠가 내 영화로 꼭 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막연한 꿈처럼 느껴진 칸영화제인데 예상보다 더 빨리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게돼 기쁘다. 지금은 황금종려상 수상 기대보다는 초청 자체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심사위원의 일 아닌가? 칸영화제에서 내 작품을 보는 모든 관객이 영화를 보며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고 고백했다.


'령희'에 대해 연제광 감독은 "몇 년 전 불법 체류자가 단속을 피하다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체류자는 당시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 불법 체류 단속반이 단속을 계속 강행해 끝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때 단속 때문에 사고사를 당한 것인데 자살 처리가 됐다는 보도를 접했는데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갓집이 충청도의 한 시골에 있는데 외갓집을 갈 때마다 외국인 노동자가 점점 많아지더라. 이런 나의 외갓집 풍경과 그때 그 불법 체류자 사건이 겹치면서 '령희'를 구상하게 됐다. 지난해 초 영화를 기획했고 가을에 영화를 촬영, 올해 1월 촬영이 끝났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된 공장은 실제 외할아버지의 오랜 양조장 공장을 배경으로 했다. 촬영할 때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 1000만원의 제작비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령희'를 만들어 칸영화제까지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령희'를 관찰자의 시각으로 담고 싶었다. 함부로 메시지를 과잉으로 전하기보다는 관객이 한 발짝 물러난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랐다. 엔딩에서 약자인 령희의 시신을 또 다른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가 처리하는데 이런 한국 사호의 부조리한 모습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성찰하고 싶었다. 영화는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작들 그리고 앞으로 그릴 신작들 역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이미지를 잘 구축한다면 앞으로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한국영화는 칸영화제에서 '소풍'(99, 송일곤 감독)이 단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대상, '취화선'(02, 임권택 감독)이 경쟁 부문 감독상, '올드보이'(04, 박찬욱 감독)가 경쟁 부문 심사위원대상, '주먹이 운다'(05, 류승완 감독)가 감독 주간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망종'(05, 장률 감독)이 비평가 주간 프랑스독립영화배급협회상, '밀양'(07, 이창동 감독)이 경쟁 부문 여우주연상(전도연), '만남'(07, 홍성훈 감독)이 시네파운데이션 3등, '스탑'(08, 박재욱 감독)이 시네파운데이션 3등, '박쥐'(09, 박찬욱 감독)가 경쟁 부문 심사위원상, '남매의 집'(09, 조성희 감독)이 시네파운데이션 3등, '시'(10, 이창동 감독)가 경쟁 부문 각본상, '하하하'(10, 홍상수 감독)가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 '아리랑'(11, 김기덕 감독)이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 '야간비행'(11, 손태겸 감독)이 시네파운데이션 3등, '세이프'(13, 문병곤 감독)가 단편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 '아가씨'(16, 박찬욱 감독)가 경쟁 부문 벌칸상(류성희 미술감독), '버닝'(18, 이창동 감독)이 경쟁 부문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벌칸상(신점희 미술감독) 수상 이력이 있다.

무엇보다 단편 경쟁 부문으로는 문병곤 감독이 한국 감독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한국 영화사의 큰 족적을 남긴바, 연제광 감독 또한 유력한 수상 후보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연제광 감독은 일찌감치 '령희' 팀들에 "김칫국 냄새도 맡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는 후문. 이와 관련해 "원래 내 삶의 좌우명이 '어떤 일이든 김칫국 냄새도 맡지 말자' 였다. 미리 호들갑 떨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싶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잔뜩 기대했다가 기대만큼 성과를 못 얻으면 속상하지 않나? 그저 칸영화제를 즐기다 가겠다"고 겸손을 보였다.


올해 칸영화제는 연제광 감독 외에도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 부문에 '기생충'(봉준호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작), 미드나잇 스크리닝(비경쟁) 부문에 '악인전'(이원태 감독,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작)이 진출, 전 세계에 한국영화의 위상을 펼칠 전망. 봉준호 감독, 이원태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연제광 감독은 칸영화제를 취재온 한국 취재진 사이에서 '리틀 봉준호'로 불리는 중. 이에 "나에게 정말 과분한 수식어다. 수식어 자체가 아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평소에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정말 좋아했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과 함께 칸영화제에 진출한 것만으로 감회가 새롭고 감사하다. 또 '젊은 아흐메드'의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감독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지 않았나?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번에 우연히라도 칸에서 마주쳤으면 좋겠다. 팬심을 드러내고 싶다. 계획된 일정을 마치고 올해 칸영화제 초청작을 볼 계획이다. 좋아하는 감독들의 신작을 먼저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칸영화제가 끝난 뒤 한국으로 돌아갈 연제광 감독은 칸영화제 초청 전부터 준비 중이었던 첫 번째 장편영화 준비에 돌입할 계획. '서울의 밤'이라는 가제가 붙은 연제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서울에서 현실에 발버둥치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사 집 출신 송대찬 PD와 손잡고 본격 한국 관객을 만날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


올해 칸영화제는 14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칸에서 열리며 개막작으로 짐 자무쉬 감독의 '더 데드 돈트 다이'가, 마지막 상영작(올해부터 폐막작 대신 마지막 상영작으로 표기)은 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더 스페셜스'가 선정됐다. 한국영화 진출작으로는 경쟁 부문에 '기생충', 미드나잇 스크리닝(비경쟁 부문)에 '악인전', 시네파운데이션(학생 경쟁) 부문에 '령희'(연제광 감독), 감독 주간에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정다희 감독) 등이 칸영화제를 통해 소개된다.

글·사진=칸(프랑스)soulhn1220@sportschosun.com, 영화 '령희' 스틸 및 해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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