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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뮤지컬시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신선한 스타일의 작품 한 편이 서울에서 공연 중이다.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국내 초연 무대를 시작한 '시티 오브 엔젤(City of angels)'이다.
198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시티 오브 엔젤'은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다. 당시 유행했던 통속 탐정드라마와 할리우드 코미디, 2개의 장르를 정교하게 엮어 매우 지적이고 흥미로운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현실'은 컬러 조명, '허구'는 그 시절 유행했던 필름 누아르(film noir)처럼 흑백 조명으로 처리한 것을 비롯해 작품 곳곳에 영리한 아이디어들이 가득 차 있다. 유기적이고 스타일리시한 무대 세트는 현실과 허구, 현재와 과거를 가르며 숨가쁘게 전환한다. 여기에 모던재즈와 쿨재즈를 활용한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작곡가 사이 콜먼의 음악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세련미가 있다.
스타인과 스톤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모두 '현실'과 '허구'에서 1인 2역을 맡는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처럼 등장인물들이 많고 극중극 형식이라 이야기가 복잡하지만 차근차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특히 현실과 허구가 조우하는 클라이맥스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팝아트와 키치 등 포스트모던 기법의 파노라마를 통해 '천사의 도시'가 알고보면 돈과 살인, 섹스, 권력을 좇는 속물들의 도시임을 신랄하고 유쾌하게 풍자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스타인 역의 강홍석, 스톤 역의 테이를 비롯해 백주희 박혜나 정준하 등은 적절한 과장을 섞어 장르의 특성을 부각시키면서 무대를 살아 숨쉬게 한다. 강홍석의 순수한 열정과 테이의 능청맞음이 조화를 이룬 앙상블은 볼만하다. 오경택 연출을 비롯해 김문정 음악감독, 홍유선 안무 , 이엄지 무대디자이너 등 스태프들 역시 원작의 국내화를 위해 한마음으로 뭉쳤다.
'시티 오브 엔젤'은 뮤지컬이 '배우의 예술'이기 이전에 '음악과 극본의 유기적 조화'임을 새삼 보여준다. 사실 국내 뮤지컬시장은 티켓 파워를 앞세운 스타 마케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어떤 작품이냐' 보다는 '누가 나오느냐'에 초점을 맞춘 멜로드라마, 한 발 나아가 종잡을 수 없는 형이상학을 담은 허술한 텍스트들이 너무 많다. 뮤지컬 발전의 측면에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티 오브 엔젤'은 자극이 되는 작품이다. '진짜' 뮤지컬 팬이라면 놓칠 수 없다. 샘컴퍼니, CJENM 제작.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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