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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바둑 황제'' 조훈현 국수가 자신을 모티브로 한 휴먼 드라마 영화 '승부'(김형주 감독, 영화사월광 제작)에 대한 감상평을 남겼다.
"처음엔 과연 이 바둑을, 이 얘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 생각했다. 사실 바둑 자체는 그냥 앉아서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거라 그려 내기가 굉장히 힘들다. 다른 운동 경기라든가, 예를 들어 격투기 같은 종목은 그리기가 쉬운데 바둑은 머릿속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그걸 끄집어내야 되는 종목이다. 전 어떻게 이게 얘깃거리가 되나 그런 게 걱정이 됐고, 두 번째는 과연 이게 인물의 이름도 내 이름으로 나가는데 과연 반응이 어떨까 그게 제일 걱정이 됐다"
▶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낌은 어떤가.
▶ 이병헌은 조훈현 국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국수의 업적과 이야기뿐만 아니라 패션, 습관 등까지 많이 찾아보고 공부했다고 한다. 이병헌이 연기한 조훈현은 어땠나?
"사실 바둑이란 게, 이게 참 그려 내기가 힘들다. 바둑이 내면적이지, 외면적인 건 아니다. 그런데도 보면 나를 많이 나타냈다. '어? 이거 내가 옛날에 저랬는데? 저런 분위기였는데' 하는 마음이 든다. 그때의 분위기라든가, 거기에 알맞게 연기했다는 거는 대단한 명연기라고 생각이 든다"
▶ 영화 속 '조훈현'의 의상은 어떻게 보셨나? 실제 국수의 모습을 잘 아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팬들까지 주변 반응을 예측해 본다면?
"옷에 대해 많이 신경 썼다고 얘기 들었다. 사실 그때는 나는 의상은 신경을 안 썼고. 보통 아내가 다 해줬으니까 '이거 입어' 그러면 그걸 입고 나가고 그랬다. 영화 보니까 옷이 자주 바뀌더라. 이제 영화를 보고 아시는 분에게 연락이 올 것 같다. 잘 봤다든가 내용이 어떻다든가. 그런데 솔직히 아는 사람들은 나쁘게 얘기는 안 할 것이다. 아무리 나쁘게 봐도 '잘 봤어, 재밌었어' 그러지. 바둑을 모르시고, 또 조훈현이라는 사람을 모르시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나 자신도"
▶ 영화에서 표현된 조훈현과 실제 조훈현의 가장 닮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꼽는다면?
"내가 스승에게 배운 게 있다. 그걸 그대로 이창호에게 물려준 건데. 스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고, 그냥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 길로 가게끔. 영화를 보니까 막 이제 야단도 치고 하는데, 그건 영화니까 그렇고 실제로는 아니다. 이창호가 알아서 저렇게 컸고 알아서 잘한 거지, 내가 저렇게 잘 가르친 건 아니다"
▶ 사제지간의 대국을 스크린으로 본 소감은?
"영화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떠오르더라? 사실 거의 비슷하게 그려냈다. 경기에서 졌을 때 아픔이라든가, 또 싸울 때 아픔이라든가. 그런 게 사실 좀 나로서는 저걸 어떻게 그릴 것인가,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아주 잘한 것 같다. 물론 뭐 영화가 실전이랑 똑같이는 못 그리는 거지만, 대부분 잘 그려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 실제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또는 인상에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실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제자 이창호를 가르치는 과정, 그런 장면들은 마음에 들었다"
▶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바둑 기사이자 이 시대 최고의 승부사다. 승부의 첫째 조건은 '기세'이며, 승부사라면 어떤 승부에서도 자신만만한 기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2025년의 조훈현 국수도 여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나?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섰기 때문에 생각이 조금 다를 것 같다. 그때는 사실 최정상을 위해서만 공부를 했고, 싸워왔고, 젊었으니까 그런 자신도 있었고. 해야만 했기 때문에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어도 따라 주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젊은 사람한테는 패기라든가 공부라든가, 노력하는 건 권하고 싶다. 그게 뭐 사실 별거 아니지만 뭐 모든 공부라든가, 경험을 쌓으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는 그게 도움이 된다. 내가 경험해 무언가 지금 생각해서는 쓸데없는 얘기 같을진 모르지만 결국은 무언가는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뭐든지 배우고 노력하고 하다 보면 아마 앞으로 전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 조훈현 국수가 이창호 국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이창호 국수 역시 조훈현 국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돌이켜봤을 때 한 인간으로서, 또 동료이자 후배 바둑 기사로서 어떤 영향이 있었나?
"일단 내가 뭘 가르친 것도 없는데, 세계에서 바둑으로 1인자가 되었고, 컸기 때문에 그거에 대해서 정말 내가 아무리 가르쳤다 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의 스승인 내가 더 고맙게 생각한다. 또 내가 생각하기에는 남한테 욕은 안 먹는 거 같다. 제자가 욕먹으면, 본인도 그렇지만 스승으로서는 사실 잘못 가르친 거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욕먹지 않는 제자가 돼 가지고, 또 본인이 잘해서 1인자가 돼 주어서 그걸로 만족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다"
▶ "젊었을 때는 정상을 지키기 위해 험한 승부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승부를 떠났다. 바둑을 통해서 내 인생을 살 뿐이다"라고 했다. 바둑을 통해서 배운 인생의 태도와 깨달음이 무엇인가?
"깨달음이라는 게 끝이 없다. '여기까지'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내가 하다 보면. 이제 계속해서 앞으로 가는 거고, 전진하는 것이다. 그니까 계속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제 더 많은 어려움도 닥치고. 또 거기를 또 돌파하면 또 다른 벽이 막히고. 또 그걸 돌파하면 올라가야 되니까. 그게 뭐 여기까지 오면 된다, 깨달으면 된다 그거는 아닌 것 같다. 사람 나름의 벽이 있고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니까 끝없이 배우는 거다. 그래서 내 바람은 앞으로는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과연 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과연 얼마큼 깨달았느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 그게 내 자신도 가장 궁금하다. 계속해서 어떤 하루를 살더라도, 1년을, 10년을 살더라도 계속 나는 앞으로 내 길로 전진한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그니까 멈춤이 없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끝났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 국수의 모토인 '無心(무심, 사사로운 욕심을 비워내고, 평상심으로 최선을 다한다)'이라는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 한 번 부탁드린다.
A"사실 모든 일이 욕심이 많기 때문에 사고들이 많이 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바둑도 이기겠다는, 물론 이겨야 되겠지만, 이기겠다는 그 욕심. 또 조금 여기서 득을 봐야지 할 때, 그럴 때 역전이 많이 된다. 제대로만 뒀으면 되는데 여기서 좀 더 많이 이기겠다 했을 때 역전이 많이 된다. 그래서 평정심이라 할까. 그니까 평정심, 무심 뭐 거의 비슷한 얘긴데. 욕심을 내지 않고 정확히 그 상황을 바라봐야 된다. 바둑뿐만이 아니라 내 인생, 또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내 상황이 어떤 것인지 그걸 정확히 보는 게 그렇다. 그래서 욕심을 버린다는 건데. 제일 첫째가 그냥 아무 생각은 아니지만 욕심을 안 내고 내 현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흔들리는 상황에, 그 바깥에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게 무심인데 사람인 이상 쉽지가 않다. 살다 보면 자꾸 생각이 흔들린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했을 때는 휘둘리지 말고 평정심이라 할까, 무심의 경지로써 이걸 바라봐야 한다"
▶ 마지막으로 '승부' 관객 분들에게 한마디가 있다면.
"나도 봤지만 재미있고. 또 좀 울리는 대목도 있다. 가슴에 느껴지는 그게 있다. 어쨌든 재밌게 봤다"
한편, '승부'는 이병헌, 유아인,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김강훈 등이 출연했고 '보안관'의 김형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