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인물로 조명한 격동의 현대사…신간 '인명진, 시간의 기억'

기사입력 2025-04-15 16:25

(서울=연합뉴스) 1993년 10월 11일부터 11월 22일까지 동대문교회에서 열린 제2기 한국교회환경학교에 강사로 나선 인명진 목사의 모습.[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아카이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2017년 3월 30일 자유한국당 인명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사임을 하루 앞두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용수 기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문서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순히 시간의 순서에 따라 벌어진 일을 나열하기보다는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어떤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마치 드라마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게, 알기 쉽게 역사를 살펴보도록 도와준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 은퇴 후 한국국제학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임종권은 신간 '인명진, 시간의 기억'(인문서원)에서 장로교 원로 목사인 인명진(80)을 축으로 삼아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본다.

인 목사는 젊은 시절 민중신학에 심취했고, 유신 정권 시절 노동·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내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파면 국면에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인생 후반기의 행로는 세인의 예상을 벗어난 방향으로 나갔다. 그는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창립 멤버 중 한명이었음에도 영구 제명당했고 변절자라고 평가받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인 목사는 1945년(호적은 1946년) 광복을 2개월 남짓 남기고 충남 당진군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격동의 순간들을 겪었다.

책에 따르면 인명진은 고교 시절 함석헌(1901∼1989) 선생을 만나 무교회주의에 심취했으며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민중을 위하여 예수와 같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게 됐다. 그는 결국 일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민중신학의 본거지인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에 입학했다.

이와 관련해 책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크게 두 갈래로 나뉜 한국 개신교의 흐름에도 주목한다. 보수 교단은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며 교회 성장 및 교세 확장에 주력한 반면 진보 교단은 신학적 뒷받침 아래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재해석하고 개인보다 사회 구원, 교회 성장보다 교회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며 이른바 에큐메니칼(에큐메니컬) 사회참여 운동을 벌이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책은 급격한 도시화 배경으로 대형 교회가 성장하며 교세 확장을 위해 정경 유착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면서 종교의 본분에서 멀어진 일부 교단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기도 한다.

인명진은 원래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 속에서 성장했으나 대전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 새로운 흐름을 접하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진보적 기독교인의 근거지인 한국신학대를 택하는 계기가 됐다고 책은 전한다. 그는 장신대 신학대학원 2학년 때 벌어진 전태일(1948∼1970) 분신 사건 등을 계기로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는 신학대학 졸업 후 '무궁화 비누공장', '독립문 메리야스' 공장 등에서 1년가량 일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73년 당시 노동자의 피난처로 불리던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실무자로 부임했다.

책은 인명진이 공장 내 여성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조직한 것을 비롯해 10960∼1970년대 한국 노동 운동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체 중 하나인 영등포산업선교회의 활동을 조명한다. 인명진은 가발 수출업체 여성 노동자들이 사측의 폐업에 항의하며 야당인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YH무역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으며 그는 이를 분기점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게 됐다고 책은 전한다.

사회 운동에 몰입했던 인명진 목사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으로 영입된다. 그가 앞서 걸어왔던 노선과는 다른 보수우파 측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책은 "건전한 보수와 착한 진보가 부재하여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이념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인 목사는 그로부터 9년 후인 2016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절벽 끝에 오른 한국 보수우파의 살길"을 열어주고 "정치적 이념이 변절됐다는 비난"을 받는다.

책은 개인의 선택이 사회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 주목하며 원로 목사가 걸어온 길을 통해 시대의 모순과 어떻게 직면할지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우리가 인명진의 개인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한국 현대사의 변동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이다. 물론 인명진이란 인물의 이미지는 단편적으로 정치·사회운동가이자 종교인으로 요약되지만, 그의 삶의 역사적 본질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역사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에 관한 교훈이다."

660쪽.

sewonlee@yna.co.kr

<연합뉴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