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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이끈 세계화…신간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

기사입력 2025-04-1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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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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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인도네시아 군도인 말루쿠제도는 네 개의 지각판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늘 불안정하다. 2004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해일은 인근 14개국을 강타하며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 이 단층선에 사는 사람들은 늘 땅의 불안정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화산 폭발과 쓰나미 등 불안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이 지역이 높은 인구 밀도를 유지하고 있는 건 비옥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화산 토양과 몬순 강우, 열대성 기온 덕택에 이 지역은 우림이 무성해졌고, 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진화했다. 그 중에선 음식에 풍미를 더해주는 향신료도 있었다.

코란을 들고 동쪽으로 향했던 무슬림들은 일찍이 인간이 먹는 데 취약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현지인이 음식에 넣어 먹는 육두구와 정향의 위력을 눈치챘다. 이들 향신료는 음식과 음료의 향미를 높여 열락을 느끼게 해줘 현지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여기에 방부제, 진통제, 최음제로도 활용돼 인기가 높았다. 장사에 능한 아랍 상인들은 향신료의 맛과 효용성을 보고 돈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들은 중계무역을 통해 유럽 귀족들에게 향신료를 팔기 시작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곧바로 향신료 맛에 빠져들었다. 너도나도 향신료를 찾으면서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유럽 귀족들은 향신료값을 치르느라 수많은 금을 무슬림에게 헌납했다. 향신료 가격은 현지 가격에 견줘 1000%까지 뛰었다. 게다가 아랍 상인들은 정향과 육두구의 원산지를 비밀에 부쳤기에 유럽인들은 향신료가 나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떠도는 풍문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고, 향신료에 대한 유럽인의 갈증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졌다. 이제 유럽인 중에 '마법의 열매'를 찾는 자가 생긴다면 엄청난 부자가 될 것임이 자명해졌다. 굶주리고 서로 다투며 공격적이었던 유럽의 수많은 모험가가 배를 타고 이 마법의 열매를 찾아 떠났다. 바야흐로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 로저 크롤리가 쓴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책과함께)는 포르투갈인이 말루쿠제도 믈라카에 도착한 1511년부터 에스파냐가 마닐라를 건설한 1571년까지 말루쿠제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향신료 전쟁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인들이 세계 교역망을 형성하고, 마닐라, 마카오 등 세계적 도시들을 만들어내며 해상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이들의 발걸음은 말루쿠제도에 그치지 않았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무역로를 따라 중국인들과 거래했고, 일본까지 진출해 화승총을 팔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향신료가 임진왜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은 대항해시대를 연 유럽 국가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추적하며 근대 세계를 형성한 16세기 해상 경쟁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조행복 옮김.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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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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