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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프랑스와 미국 빈자리 차지하는 러시아

기사입력 2025-04-24 07:50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북서아프리카를 새로운 전략적 거점 삼아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 AES '뜨고' ECOWAS '지고'…서방 주도 지역기구 유명무실화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 쿠데타 군정으로 구성된 사헬국가연합(Alliance des Etats du Sahel·AES)이 출범했다. 2020∼2021년 말리를 시작으로 군부가 잇따라 집권한 이들 '쿠데타 트리오'는 프랑스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단절한 후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2022년에서 2024년 사이 이 세 나라에서 최소 4천300명의 프랑스군과 1천명의 미군이 철수했고, 1만명 이상의 유엔군이 철수했다.

잦은 쿠데타와 테러 집단의 공격이 발생하면서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 대한 지역민의 불만이 팽배해졌다. AES 세 국가에 더해 차드, 토고, 세네갈 등에서도 서구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서아프리카 전체로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용병그룹 바그너(Wagner)를 끌어들여 활동했다. 바그너 그룹이 아프리카 군단(Africa Corps)으로 넘어가며 러시아 정부가 서구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AES 국가들은 서아프리카 전역에 확산하고 있는 테러집단 척결을 위한 합동군을 편성하며, 러시아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작전 수행과 군대를 제공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AES 국가들은 러시아 편에서 주요 결의안을 선택하는 데 확실한 지지를 보태고 있다.

AES는 서아프리카에서 중립적이거나 서방과 우호적인 지역 정치 및 안보 기관에서 탈퇴함으로써 기존의 지역기구를 약화하고 있다. 2025년 1월 29일 AES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에서 완전히 탈퇴했다.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 세네갈 대통령이 방문해 극구 탈퇴를 말리기도 했지만, AES 국가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AES의 탈퇴로 그 어느 아프리카 지역기구보다 견고했던 ECOWAS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AES 국가는 이슬람 테러리즘에 맞서기 위한 아프리카연합(AU), 유엔(UN), 서방이 지원하는 두 군사 임무인 사헬 G5(Sahel G5)와 차드호 유역의 다국적 합동 태스크포스(MNJTF)와 같은 안보 동맹에서도 탈퇴했다. 이 정도면 서방 주도 하의 지역기구들이 유명무실해지고 지역의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ES에 대해 지역의 다른 국가, 즉 차드가 2024년 4월 가입을 타진했다. 토고는 외무장관이 2025년 3월 지역협력을 강화하고 내륙 사헬국가에 해상 접근을 제공하기 위해 'AES에 가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드와 토고는 2024년 5월 AES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수단 정부군(SAF) 지도자들도 2024년 6월 말리와 니제르를 방문해 군사·외교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세 국가(차드, 토고, 수단)는 AES에 가까워지면서 러시아와도 가까워졌다. 2024년 초 러시아 군사 고문 30여명이 토고에 머물며 양국 관계의 새로운 서막을 알렸다. 2025년에는 토고 내 러시아 대사관을 설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행보에는 북서아프리카 연결망(토고-사하라·사헬-리비아) 때문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 군사·경제·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서방의 영향력을 약화하려고 한다.

◇ 사하라 대상로(隊商路)에서 러시아 영향력 확대…유럽에 전략적 위협

지난 3일 AES의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모였다. 사헬지역에서 반(反)프랑스 정서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산하고, AES 국가들은 러시아와 함께 광물자원 개발 및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게 주목적이었다. 회담 다음 날인 4월 4일에는 러시아 정부 웹사이트에 AES 국가들이 테러집단에 맞설 수 있는 통합군대 창설은 물론 합동은행, 통합 라디오·TV 네트워크 등을 구축하는 데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이번 러시아 회담에서 눈에 띈 것은 AES 국가들이 만든 연합 깃발을 처음으로 공식 회의석상에 올렸다는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승인받으면서 AES의 결속력을 외부에도 알린 것이다. 러시아-AES 회의는 매년 양 지역을 오가며 개최하는 데도 합의했다. 이렇게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은 양자 무역규모가 성장한 데서도 알 수가 있다.

러시아-AES 국가 간 외무장관 회담에서 러시아의 라브로프 장관은 양 지역 간 무역규모가 10배 이상 증가했고 향후 더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농산물, 비료, 에너지 자원 등을 공급해 지역의 경제 발전이 원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AES는 브릭스(BRICS)와의 관계 강화를 구축해 다국적 세계의 중요한 축으로 삼겠다고 했다. 브릭스 회원국인 러시아가 AES를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처음 AES가 인정받은 셈이 되었다.

니제르는 프랑스 대사관을 폐쇄하고 러시아 대사관을 열기로 했다. 러시아 또한 2025년 이내에 자국 내 니제르 대사관을 개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듯 지역의 판도는 급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AES 국가들이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국제프랑코포니기구(OIF·국제 프랑스어권 기구)에서 2025년 3월 공식 탈퇴했다.

OIF가 더 이상 자신들이 원하는 이익을 위해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국가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어 대신 여러 모국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프랑스의 흔적을 지우려는 일련의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동안 눈치를 보고만 있었던 프랑스의 우방국 차드도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낼 기회를 잡게 됐다. 차드는 2024년 11월 프랑스와 방위협정을 취소하고 2025년 1월 말 프랑스군을 완전히 철수시켰다. 세네갈 또한 러시아와 관계는 아니지만 프랑스군 철수를 추진한다. 이에 따라 2025년 말까지 프랑스군이 완전히 철수할 예정이다.

프랑스와 미군의 철수는 러시아에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AES 국가 이외에도 수단에서 러시아는 SAF에 무제한 군사 지원을 약속한 후 수단 홍해 연안에 러시아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약속을 이행하기로 2025년 2월 합의했다.

이처럼 서아프리카, 특히 사헬지역에서 러시아가 굳건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유럽의 남부 지역을 위협할 수 있게 됐다. 서아프리카 기니만에서 리비아까지 이 지역은 과거 사하라 대상들이 개척한 경로였다. 현재는 서아프리카 이주민이 사하라를 횡단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유럽을 불안정하게 하기 위해 이주 추진 세력을 조장하고 AES 국가들이 유럽연합(EU)과 맺은 이주 협정을 파기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테러집단 활동이 더 두드러지면서 각종 밀매의 주요 루트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는 서아프리카 기니만에서 사하라·사헬지역을 거쳐 수단, 리비아까지 과거 사하라 대상로를 자신들의 지역으로 삼음으로써 전략적으로 유럽을 위협하고 프랑스와 미국의 빈자리를 대신해가고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

dlarleo@hanmail.net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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