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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잘 갈린 칼날은 섬세하고 예리하게 짜인 범위를 알맞게 잘라내지만 무뎌진 칼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짓이겨져 더 큰 고통을 남긴다. 영화 '파과'도 그렇다. '대모' 이혜영은 무뎌진 칼이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칼이다. 처절하고 치열하게 한계를 도전하는 63세 '명품 배우'의 피땀눈물이 고귀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혜영 보유국에 산다는 것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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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인간에 대한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섬세하고 세밀한 연출 장기를 '파과'에 마음껏 쏟아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99) '내 아내의 모든 것'(12) '허스토리'(18) 등 공포, 스릴러, 로맨스, 휴먼 등 장르 편식 없는 다양한 장르로 쌓은 내공을 '파과'에 갈아 넣어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영화만의 보는 맛을 잘 살려냈다. 기존에 충무로에서 늘상 봐왔던 복수로 시작된 막무가내식 액션이 아닌, 농밀한 서사와 드라마가 밑바탕이 된 '감성 액션'의 신기원을 연 민규동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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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는 몇 년째 위기를 면치 못하는 극장가에 일침을 날릴, 신선한 충격이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성품처럼 뻔하고 고루한 장르물에 신물이 난 관객에게는 확실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극장에서 볼만한 장르 영화다.
충무로에서 기피하는 여성 원톱 서사, 게다가 여주인공이 63세 중견 배우라는 사실 만으로 개봉까지 험난한 여정을 겪었을 '파과'. 그 어려운 걸 끝내 해내고 만 민규동 감독과 이혜영의 눈물겨운 진심이 봄 극장가 관객에게 닿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원래 멍들고 흠집 난 '파과(破果)'가 더 달콤한 법이다.
'파과'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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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