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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상원고를 졸업한 2007년 2차 1라운드 8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백정현(38).
백정현은 올시즌 8년 만에 불펜 보직으로 돌아왔다.
"내 생각보다 (선발을) 더 오래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훌륭한 후배들이 해야한다"며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는 삼성 불펜에서 소금 같은 역할을 하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7경기 11⅓이닝 4안타 3실점으로 2.38의 평균자책점. 이닝보다 많은 12탈삼진을 솎아내는 동안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은 각각 1개 뿐이다.
140㎞ 초반의 직구. 하지만 타자들의 체감 위력은 다르다.
8회말 KT 선두타자 배정대는 0B2S에서 142㎞ 몸쪽 낮은 직구에 얼어붙었다. 포구 위치 상 낮은 볼로 보였고, 배정대도 그렇게 판단해 기다렸다. 하지만 ABS 콜은 스트라이크 아웃. 순간 놀라 타석에 잠시 멈춰섰던 배정대는 덕아웃으로 돌아섰다.
가장 낮은 존 앞 뒤를 통과했다. 통상 150㎞를 넘나드는 광속구 투수들에게 볼 수 있는 존 통과 그림. 그만큼 백정현의 볼이 미트에 들어가지 직전까지 떨어지지 않는 볼끝에 힘이 있다는 방증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아트 피칭의 교본이다. 빠르지 않지만 위력 있는 공을 던진다. 직구 슬라이더 포크볼로 타이밍을 빼앗으며 구석구석을 찌른다.
보직 욕심도 없지만 끊임 없이 노력한다. 미국 트레이닝 센터와 소통하며 자신의 투구폼을 체크한다. 지난 겨우내 포크볼을 새로 장착해 잘 써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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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태는 "스피드 많이 내려고 하지 않고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노하우를 형한테 배우고 있다"고 감사해 했다. 다른 후배들 역시 표정 변화 없이 한결같은 정현이 형에게 조언을 구한다.
지난해 가을야구 준비 중 손가락 미세골절로 출전하지 못했던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올시즌 내려놓은 선발투수 보직까지 아쉬울 법 하지만 삶의 의미를 성찰해가는 그 답게 덤덤하기만 하다.
몸 관리 하기 어려운 불펜 보직에 대해서는 "원래 어릴 때 불펜사 시작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 그냥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밀힌다. 포스트시즌 승선 불발에 대해서도 "내가 못 가면 다른 선수에게 좋은 기회가 아닌가"라며 "내가 포스트시즌에 가는 게 더 좋은 상황이었다면 부상을 입는 상황도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덤덤 하게 말한다.
루키 배찬승 밖에 없는 삼성 불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19년 차 베테랑 좌완투수. 한결 같은 그가 있어 팬들도, 삼성 박진만 감독도 안심할 수 있다.
왕조시절 불펜 끝자락을 지켰던 청년투수가 어느덧 불혹을 앞둔 최고참급으로 불펜에 돌아왔다. '왕조 어게인'을 외치는 삼성에 큰 힘이자, 투수의 교본이자, 베테랑의 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