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의 발롱도르]케인이 없어도 괜찮아, 손흥민이 있으니까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3-12 10:30


ⓒAFPBBNews = News1

전반 28분이었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로빙패스를 받은 해리 케인이 슈팅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골키퍼와 충돌했다. 오른 발목을 접지른 케인은 의료진과 상의 후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2시즌 연속 득점왕인 케인은 올 시즌에도 24골로 득점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토트넘의 절대자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원톱 공격수 페르난도 요렌테 대신 미드필더 에릭 라멜라를 투입했다. 그리고 손흥민을 최전방으로 올렸다.

'원톱'으로 변신한 손흥민이 또 한번 날았다. 손흥민은 12일(한국시각) 영국 본머스 바이탈리티스타디움에서 열린 본머스와의 2017~201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0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멀티골을 폭발시켰다. 전반 7분 주니오 스타니슬라스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다니던 토트넘은 왼쪽 윙어로 홀로 빛나던 손흥민을 최전방으로 돌린 뒤 경기를 뒤집었다. 전반 35분 델레 알리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손흥민의 득점쇼가 시작됐다.


ⓒAFPBBNews = News1
후반 17분 알리의 크로스를 멋진 발리슈팅으로 연결하며 역전골을 뽑은 손흥민은 후반 42분 에릭센의 스루패스를 받아 골키퍼까지 제치며 추가골까지 성공시켰다. 4경기 연속골의 상승세를 이어간 손흥민은 리그 12호골이자 시즌 18호골을 신고했다. 추가시간 세르쥬 오리에의 골까지 넣은 토트넘은 4대1 완승을 거뒀다. 승점 61점이 된 토트넘은 리버풀(승점 60)을 제치고 3위로 뛰어올랐다.

손흥민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경기였다. 팀 득점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는, 그것도 전술의 핵심을 이루는 '에이스 원톱'이 불의의 부상으로 쓰러졌다. 감독 입장에서는 준비한 계획을 모두 바꿔야 하는, 그야말로 커다란 변수를 맞이했다. 하지만 포체티노 감독에게는 손흥민이 있었다. 사실 과거에도 손흥민은 케인의 부재시 종종 원톱을 맡았다. 프로에 데뷔한 함부르크 시절, 손흥민의 포지션은 최전방 공격수였다. 낯선 위치는 아니지만, 경기 중 위치 변화는 선수에게도 모험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본머스가 세차게 토트넘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AFPBBNews = News1
하지만 손흥민은 그 기대에 멋지게 부응했다. 득점도 득점이었지만, 케인 못지 않은 존재감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사실 과거 손흥민이 원톱에 섰을때만 하더라도, 변칙 옵션의 성격이 컸다. 제로톱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상대를 교란시켰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토트넘의 공격작업 장면마다 손흥민이 중심에 있었다. 손흥민은 페널티박스 밖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적극적인 돌파와 연계를 이어나갔다. 과감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냈다. 정통 공격수의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존재감만큼은 그에 못지 않았다. 적극적인 압박으로 토트넘을 밀어붙이던 본머스의 수비진은 '원톱' 손흥민의 날카로움에 힘을 잃었다.

경기 후 아직 정확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지만, 케인은 장기부상이 유력한 상황이다. 지난해 두달간 결장할 당시, 바로 그 부위를 다시 다쳤다. 토트넘 입장에서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토트넘은 첼시와의 FA컵 4강전을 비롯해 유럽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해 리그에서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치고 있다. 공격의 중심인 케인의 부상으로 변화가 불가피 하다. 어떤 변화를 택해도, 키플레이어는 하나다. 바로 손흥민이다.


ⓒAFPBBNews = News1
기존의 4-2-3-1 포메이션에서는 왼쪽 날개 혹은 원톱 기용이 가능하다. 왼쪽 날개로 나설시에는 요렌테가 최전방에 설 가능성이 높다. 요렌테가 공중볼과 연계가 좋은 반면, 결정력에 아쉬움을 드러내는만큼 손흥민이 더 적극적으로 노려야 한다. 손흥민이 원톱으로 올라갈 시에는 라멜라 혹은 루카스 모우라가 그 자리를 메울 것으로 보인다. 본머스전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면 이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라멜라, 모우라를 함께 살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투톱도 가능한 옵션이다. 요렌테와 함께 손흥민이 나란히 설 수 있다. 이전에도 몇번 시도했던 조합이다. 요렌테가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손흥민이 좌우를 빠져나가며 기회를 만드는 형태다.


어떤 옵션이 돼도, 토트넘의 승리를 위해서는 손흥민이 터져야 한다. 알리, 에릭센 등의 득점력이 예년만 못한 올 시즌, 손흥민은 토트넘의 공격을 홀로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케인이 침묵한 지난 4경기에서, 손흥민은 연속골을 포함해 7골을 몰아넣었다. 케인이 빠진 지금, 토트넘의 가장 믿음직한 공격수는 손흥민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