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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직접 들어보니 비로소 이해되는 '서른, 은퇴의 이유'[영상]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9-05-29 09:48


사진제공=KFA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 이후 10년간 한국축구를 이끌었던 '1989년생 캡틴' 구자철과 기성용이 2019년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달갑지 않았다.

남자나이 서른이면 축구선수로서 기량과 경험이 만개하는 시기 아닌가. 위기를 버텨낼 베테랑의 지혜와 노하우를 국가대표 후배들과 더 공유해야지, 가장 잘 뛸 수 있는 나이인데, 왜 이렇게 빠른 은퇴를 선택했을까. 영광의 태극마크를 스스로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박지성, 기성용, 구자철의 조기은퇴 선례를 손흥민 등 후배 해외파 선수들도 따르지 않을까도 내심 걱정이 됐다. 한국축구를 위해 조건없이 누구보다 뜨겁게 헌신했던 이들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지난 26일 KFA 축구공감-구자철 토크콘서트에서 한 축구 팬이 이런 궁금증을 해소될 만한 '사이다' 질문을 던졌다. '구자철 선수가 서른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향후 서른 중반까지 뛸 수 있는 선수들도 일찍 은퇴하는 게 트렌드가 될까봐 걱정이 된다. 대표팀에서 나이에 관계없이 좋은 선수들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 요지였다.




구자철은 이 답변에 무려 10분을 할애했다. 팬들에게 은퇴의 이유를 친절하게, 충분히 설명했다. "국가대표 은퇴에 대해 (기)성용이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한국과 소속팀을 오가는 유럽파 선수들의 살인적인 일주일을 낱낱이 소개했다. "아시아 전역, 전세계를 다니면서 국가대표로 10년을 뛰어왔다. 보통 토, 일요일 독일에서 경기하고 일요일이나 월요일 비행기를 타면 월요일이나 화요일, 한국에 도착한다. 시차적응 때문에 잠을 두세 시간밖에 못잔다. 수요일 하루 운동하고 목요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뛴다. 하루 쉬고 토요일, 우즈벡으로 날아간다. 일요일, 월요일 운동하고 화요일 경기를 뛴다. 수요일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간다. 수요일 저녁이나 목요일 오전에 도착하면 금요일 훈련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 경기에 나간다. 계속 이렇게 수년간 생활해왔다"고 털어놨다.

"월드컵 예선을 하면 이런 스케줄이 한달에 한번씩 있다. 시차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독일에서, 한국에서 뛴다. 서너 시간 자고 경기를 뛴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못나가면, 한국축구가 입게 될 타격을 나나 성용이같은 베테랑선수들은 더 잘 알고 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뛴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경기에 져도 사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부상이 있든, 비난을 받든, 돌아가면 또 경기가 있고 또 주전경쟁을 해야 한다. 일주일 정도 비우고 오면 또 새로운 경쟁이 생긴다. 그 시기에 그걸 못 이겨내면 주전에서 밀린다. 한번 밀리면 다시 들어가기는 정말 어렵다. 유럽에는 어느 팀이든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 쉽지 않다"고 했다.



출처=FC아우크스부르크
치열한 주전경쟁 속에 이 악물고 버틴 날들을 털어놨다. "내 경우엔 소속팀에서 부상한 것보다 대표팀에서 부상한 경우가 더 많았다. 대표팀에서 다치고 팀에 돌아가면 독한 재활을 해야 하고 그사이에 내 자리를 누군가가 차지한다. 출근해서 경기장을 바라보면서 '오늘 내가 좋은 모습을 못보이면 경기에 못나가겠구나'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도 열심히 좋은 모습을 보여서 이번 주말 경기에 꼭 나가야지, 그래야 내 미래도 좋고, 대표팀도 좋으니까.'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꽤 길었다. 거기에 부상까지 겹치다보니 몸이 회복이 채 안된 상태에서 경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살인적인 스케줄과 이동거리, 대표팀에서도 소속팀에서도 매경기 경쟁과 분투를 10년째 이어가다보니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기 시작했다. 구자철은 "어느 순간부터 부상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운동량도 많다보니 어느 순간 몸이 못따라간다고 느꼈다. 고민이 됐다"고 했다. "이건 사실 슬픈 얘기다. 선수에게는. 국가대표를 은퇴한다고 마음 먹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월드컵 전에도 이야기했고 끝나고도 이야기했고 아시아컵 전에도 이야기했고 끝나고도 이야기했다. 정말 오래 고민했다"고 은퇴 과정과 결정이 쉽지않았음을 재차 설명했다.


사진제공=KFA
구자철은 자타공인 '긍정과 투혼의 아이콘'이다. 그 어떤 조건, 어떤 환경을 불평하거나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외로운 싸움속에 피로와 부상이 누적되면서 지친 것만은 사실이었다. 구자철은 "대표팀에서도 소속팀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은 온전히 선수의 몫이었다. 이런 것에 대해 체계적 관리를 받은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개인이 다 알아서 해야 된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면서 비난도, 회복도, 좋은 경기력 유지도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이런 부분은 아무도 모른다. 알아주지도 않고…. 후배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문적인 선수 관리가 필요하고, 조율도 필요하다. 여러가지 복잡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저희도 끌고 갈 수 있을 때까지 끌고 가고, 책임감 있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제 저희가 없어도 팀이 잘 운영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슬픈 결정을 했다"고 은퇴의 이유를 전했다.


"사실 국가대표 선수로서 충분히 다 할 수 있다. 너무 좋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비행기에서 무릎에 물이 차고, 병원에 가서 물을 빼고,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독일에서 검사받고 주사 맞고 경기 뛰고 이런 날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결국 그런 시기가 오더라. 이런 부분들을 팬들이 알아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우리 후배들이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분명 책임감이 강하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잘 이끌어 갈 것"이라며 대표팀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응원을 전했다.

10분의 긴 답변을 듣고서야 비로소 구자철의 심정이 이해됐지만 외로운 분투끝에 스스로 슬픈 결정을 선택하게 하는 시스템, 서른의 에이스를 조기에 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흥민, 권창훈, 이재성, 황희찬 등 후배들도 똑같이 걸어갈 길이다. 해외파의 '번아웃', 조기은퇴를 막을 방법, 뛰어난 국대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오래오래 볼 수 있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방법과 지원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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