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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프로구단의 존재 이유는 뭘까. 성적일까. 아니다. 사람이다. 팬이 외면하는 구단은 생존할 가치가 사라진다.
사실 출발부터 철학이 달랐다. 한 단어로 함축하자면 '자생력'이다. J리그는 철저하게 '팬베이스'로 구단을 운영했다. 반면 K리그는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됐다. 기업구단은 모기업, 시도민구단은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에만 운명을 맡겼다.
K리그 문화도 '오로지' 성적에만 길들여진 형국이다. 이제 막 첫 발을 뗐을 뿐이지만 벌써부터 일부 팬들의 단체 행동에 '구단 버스'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길거리'에 소환된 감독들은 '메가폰'을 잡고 연신 고개를 숙인다. 물론 구단은 팬들의 조그마한 목소리에도 귀를 열고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유행처럼 번지는 '실력 행사'는 결코 정상은 아니다. 방향도 틀렸다. 굳이 책임 소재를 물으려면 '버스'가 아닌 구단 수뇌부에게 따져야 한다. '힘'을 논하자면 그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사실 경기장의 주체는 각 시도여서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다. 울산은 스포츠산업진흥법을 근거로 1년여의 준비 끝에 울산시설공단으로부터 경기장 매점 운영권을 따냈다. 대전하나시티즌과 NC다이노스가 등대가 됐고, 울산시와 시설공단이 스포츠산업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
긴 노력도 있었다. 울산은 지난해 100여개의 프랜차이즈에 브랜드 입점 제안을 했다. 그러나 1년 중 최대 20일 남짓한 짧은 운영일로 유치가 쉽지 않았다. 결국 설득 또 설득한 끝에 5개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유치했고, 울산시의 사회적 기업인 '고래 떡방'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출발부터 '대박'이었다. 울산의 '굿즈 매장'은 50m가 넘는 긴 줄이 늘어섰다. 치킨, 카페, 분식, 족발 등 8개의 식음료 매장도 함께 춤을 췄다. 놀이시설도 위력을 발휘했다. 더 이상 '90분 스포츠'가 아니었다. 가족 단위의 팬들은 경기장 안에서 먹거리, 볼거리 등을 즐기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축구 뿐이었던 스타디움도 화색이 돌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 경기 최다인 2만8039명의 관중이 찾은 전북 현대와의 개막전에선 예상보다 30% 더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4년 만의 A매치도 기다리고 있다. A대표팀의 새 수장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데뷔전(24일·콜롬비아)이 울산에서 열린다. 이미 전석이 매진됐고, 매점은 A매치에도 동일하게 운영된다. 울산은 매점의 수익 중 15%를 갖게 돼 '자생력' 확보에도 진일보한 첫 걸음을 옮겼다.
울산은 한 발 더 나아가 입점 업체와 긴밀히 소통하며, 수익 극대화를 위해 협력 중이다. '축구장은 영업일이 짧아 돈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목표다. 추가적으로 울산만의 특별 메뉴도 개발하고 식음료매장을 더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FC서울은 정종수 대표와 한웅수 단장(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이 환상의 콤비를 자랑하던 2010년,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평균 관중 3만명 시대를 열었다. 당시 서울월드컵경기장 독점 운영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시설공단의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만약 그때 FC서울이 그 꿈을 실현시켰다면 오늘의 K리그 '그림'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4전 전승으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울산은 올 시즌 평균 관중에서도 2만1634명으로 1위에 위치해 있다. K리그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제2의 울산, 제3의 울산이 계속해서 나와야 한다. 각 시도 지자체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도 필요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