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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클럽의 8강 성적은 처참하다.
태국의 신흥 강호 부리람 유나이티드는 알아흘리에 0-3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마리노스는 알나스르에 1-4로 완패했다.
8강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K리그 팀인 광주FC는 알힐랄에 힘 한번 못쓰고 0-7로 참패해 망신살이 뻗쳤다.
가와사키만 카타르의 알사드에 3-2 진땀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4강에 오른 팀 수도, 경기 내용도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확 벌어진 격차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 프로리그는 국가적 '소프트 파워'를 키우겠다는 왕가의 지원 아래 2020년대 들어 광폭 성장을 거듭했다.
유럽 리그에서 30대 후반의 한물간 스타들뿐 아니라 20대 중후반으로 한창 전성기를 달리는 선수들까지 거액의 이적료와 연봉을 안기며 모셔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나스르)를 비롯해 후벵 네베스(알힐랄), 리야드 마레즈(알아흘리) 등 유럽 빅리그를 누볐던 특급 스타들이 이번 대회 4강에 오른 사우디 팀들의 전열을 수놓는다.
축구 이적 정보를 다루는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호날두를 보유한 알나스르의 선수단 가치는 1억7천500만 유로(약 2천866억원)에 달한다.
지난 시즌 K리그 챔피언 울산 HD(약 262억원)의 10배를 넘는다.
막대한 재력을 등에 업은 사우디 구단들과 보조를 맞추는 건 동아시아 안에서도 시장 규모에서 경쟁 리그에 밀리는 K리그에는 벅찬 일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격차를 줄이려면,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을 확 풀어 구단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라도 확보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우디 프로리그는 2024-2025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10명으로 늘렸다.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8명이다.
자국 선수가 소속팀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국가대표팀 전력이 약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프로리그 경쟁력만 놓고 보면 외국인 선수 확대가 긍정적 영향을 준 점은 명확하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빅리그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 아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온 일본 J리그가 '사우디의 길'을 곧 따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J리그는 이미 2019년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는 무제한으로 허용하고, 경기 출전 선수 수만 제한했다. 현재 J리그1은 5명, J리그2는 4명 출전할 수 있다.
일본 축구계에서는 최상위 리그에 한정해 외국인 출전 제한까지 아예 없애는 방안이 논의돼왔다.
사우디 프로리그의 약진은 J리그의 '결단'을 앞당길 수 있다.
K리그는 J리그보다 외국인 선수 운용의 폭이 좁다. 현재 K리그1은 외국인 6명을 보유할 수 있고 그중 4명만 출전할 수 있다. K리그2는 5명 보유에 4명 출전할 수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3년 전부터 외국인 보유 확대를 검토해왔으나 아직 뚜렷한 변화를 주지는 못하고 있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우리는 U-22(22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J리그는 아시아 클럽대항전의 추춘제 변화에 발맞춰 당장 2026-2027시즌부터 리그를 추춘제로 운영키로 하는 등 세계적 추세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많은 프로축구계 관계자들은 K리그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다가 동아시아에서도 '구멍가게' 리그로 도태되는 운명을 맞는 것은 아닐지 걱정한다.
한 기업구단 관계자는 "사우디가 정당하게 투자해 앞서나가는 것을 두고 불평등하다고 불평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우리도 J리그처럼 변화에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한다. 의지를 가진 구단이 투자를 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h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