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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퍼·기판도 포함…"실행 가능성 낮지만 예의주시"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뿐 아니라 반도체 기판을 포함한 부품과 장비, 웨이퍼 등 사실상 전체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에 두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에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14일(현지시간) 관보에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반도체 제조장비, 파생제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관련 조사 대상에는 반도체 기판(substrate)과 웨이퍼(bare wafer), 범용(legacy) 반도체, 최첨단(leading-edge) 반도체, 미세전자(microelectronics), 반도체 제조장비 부품 등이 포함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검토 중인 모든 조사 대상이 품목별 관세 항목인 반도체 관세에 포함될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뿐 아니라 삼성전기, LG이노텍, SK실트론 등도 영향권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품목별 관세는 생산지와 상관없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 관련 제품에 모두 매겨진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는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범위를 반도체 칩에 얽힌 모든 공급망으로 넓히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파운드리 업계 1위 대만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반도체 부품, 장비회사들에도 생산지를 미국에 두고, 투자하라는 압박으로 전방위적인 반도체 관세 카드를 꺼내 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웨이퍼'는 반도체 제조에 빠질 수 없는 재료여서 반도체 관세가 실현될 경우 이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SK실트론과 일본 신에츠, 대만 글로벌웨이퍼스 등 소수의 5개 업체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대부분 적으면 2∼3년, 길면 5년 이상의 장기계약으로 이뤄져 단가 인하 압박은 적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오히려 웨이퍼를 사용하는 반도체 제조업체나 세트(완제품)업체로 영향이 전가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TSMC, 삼성전자, 인텔 등이 웨이퍼를 전부 사다 써야 하는데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조사는 반도체 전체 공급망을 다 보겠다는 의미"라며 "웨이퍼 업계는 보통 장기계약이어서 물량이나 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수준이 쉽지 않고, 오히려 (웨이퍼를 필요로 하는) 업체들의 고심이 더욱 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미국 빅테크를 상대로 첨단 반도체 기판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사업을 확장 중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등 전자 부품업체들의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 공급망을 다변화한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상호관세 90일 유예로 한숨 돌린 상태지만, 이번 반도체 관세의 검토 대상 포함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웨이퍼보다 대체 가능한 업체 수가 많은 부품업체의 경우, 세트업체가 가격 인하 압박을 주는 식으로 관세 부담을 전가시킬 가능성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에 관세가 매겨져도 구매하는 쪽(세트업체)이 부담을 져야 하다 보니 세트업체가 더 싼 업체의 부품으로 갈아탈 수도 있다"며 "다만 트럼프 정부가 어떤 식으로 부품(반도체 기판)에 관세를 매길지가 아직 확실히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어서 속단하긴 이르지만 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고, 애플과 같은 미국 업체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며 "결국은 무언가 얻어내기 위한 협상용일 것"이라고 했다.
실제 협상 여지도 남아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협상을 이끄는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최근 한국을 비롯해 영국, 호주, 인도, 일본과의 협상을 우선하는 등 상호관세를 부과받은 국가들과 대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만큼, 반도체 관세 카드 역시 협상을 위한 미국의 전략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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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