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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봇물처럼 쏟아진 체육계 미투 사건 속에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는 머리를 싸맸다. 가는 곳마다 스포츠 인권의 중요성, 인권 교육 강화 및 시스템 혁신 등을 외쳤다. 꽃으로도 때려선 안되는 시대, 이를 깨물고, 커튼을 친 채 무자격 운동처방사의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꽃다운 23세 철인3종 선수의 사망사건이 더 가슴 아픈 이유는 지난해 체육계 가는 곳마다 무한 리플레이했던 단어가 바로 이 '스포츠 인권'이었기 때문이다. 문체부 스포츠 인권위의 첫 권고도 '스포츠 성폭력 등 인권 침해 대응 시스템 혁신'이었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클린스포츠센터에서 신고 이후 6개월 이상 미결된 건수가 57건에 달한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하지만 정부도, 체육회도, 국회도, 중요한 정책이라고 번지르르 말만 앞세웠을 뿐 결국 돈과 인력은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선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는 사라질 부서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실무는 대부분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계약직들에 의해 이뤄졌다. 고 최숙현 사건 이후 전직 경찰관의 전문성으로 체육계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이들의 선한 의도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해당 조사관은 "고 최숙현 선수의 변호사, 관할 경찰서와 통화 후 녹취록, 병원 기록 등 증거를 수집하면서 희망적인 부분을 발견했다. 고 최 선수에게 추가 증거 제출을 요청하며, 자주 연락하자고 했던 것이 마지막 통화가 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선 '왜 변호사가 아닌 선수에게 직접 전화했느냐' '선수를 왜 압박했느냐'는 비난이 들끓었다. 이 조사관은 "피해자 입장을 대변하고 입증하기 위해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그것이 조사관의 자세인지" 반문했다.
고 최숙현이 마지막 순간 언급한 '그 사람들'은 도리질 치고 정작 책임져야 할 '어른'들은 누구도 나서지 않는데 에먼 '계약직 조사관'만 잡는 상황은 비겁하다. 스포츠 인권이 중요하다면서 문체부, 체육회 인권 예산은 왜 매년 똑같았는지, 인권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인권 전문가여야 할 클린스포츠센터장은 왜 그렇게 자주 바뀌며(6년새 8명), 조사관, 상담사는 왜 모두 계약직이었는지, 명실상부한 위상도 없었던 선의의 조력자들이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건지 의문투성이다. 장애인체육쪽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난해 '선수들의 사랑방'으로 새로이 출범한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지원센터는 올해 초 예산 문제로 따로 차린 사무실 방을 뺐다. 대한체육회와 마찬가지로 체육인지원센터장 역시 '인권 전문가'가 아닌 순환 보직이다. 인권은 전문 영역이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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