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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도전, 열정… 우린 할 수 있습니다."
평창패럴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17일, 서광석 감독이 이끄는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1대0,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장애인아이스하키 사상 첫 메달, 썰매하키를 탄 지 20년만에 기적의 역사를 썼다. 4년전 소치패럴림픽 예선에서 한국은 이탈리아에게 일격을 당하며 4강 진출이 좌절된 쓰라린 추억이 있었다. 평창에서 짜릿한 설욕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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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와의 준결승전 0대7로 패한 후 믹스트존에서 등을 돌린 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지고는 못사는 승부사, 정승환이 마침내 웃었다. 평창패럴림픽 폐막을 앞두고 아이원 리조트에서 팀 비자(Visa) 선수 정승환을 만났다. 간절했던 동메달, 고마운 사람들, 평창패럴림픽 뒷이야기를 때론 유쾌하게, 때론 진지하게 풀어냈다. 탤런트 전광렬을 닮은 '캡틴' 한민수, 박시후를 닮은 이종경, '20대 꽃미남' 이주승 등 대표팀 내 미남 서열을 줄줄이 공개했다. "내 손으로 내 메달을 직접 목에 걸고 싶어 다른 선수의 메달은 바라보기만 했을 뿐 일부러 만져보지도 않았다"는 한마디에서 비장함이 전해졌다. 장애인, 비장애인 후배들을 향한 "꿈, 도전, 열정…우린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뭉클했다.
패럴림픽 결제 기술 부문 공식 파트너사인 Visa는 이번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전세계 21개국 15개 종목, 54명의 선수를 후원했다. 평창에서 장미란재단 대학생 기자단의 활동을 지원하는 Visa의 도움으로 정승환과 대학생 기자단의 단독 인터뷰가 성사됐다. 다음은 '아름다운 로켓맨' 정승환과의 일문일답이다.
평창=이소명(아주대 영어영문학과)-이한민(호서대 체육학과) 장미란재단-Visa평창대학생기자단 기자, 정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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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아이스하키가 축구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왜냐하면 두 개의 스틱을 쓰면서 퍽을 치는 블레이드와 블레이드 반대편에 썰매 추진을 위한 픽이 있다. 축구도 달리기 위해 양발을 써야 하고 드리블과 슈팅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맨유의 팬이라고 들었어요. 좋아하는 선수나 자신의 스타일과 비슷한 맨유의 플레이어를 뽑아본다면?
▶사실 박지성 선수 있을 때부터 맨유 팬이었다. 박지성, 루니, 테베즈, 호날두 있었을 때의 맨유가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좋아했었다. 박지성 선수도 좋아했지만, 테베즈 같은 스타일의 선수를 좋아했다. 작지만 투지 있는 스타일의 선수를 좋아한다. 현재 맨유 선수 중에는 산체스를 좋아한다.
-체코와의 예선 2차전을 직관했는데, 연장 13초에 결승골 넣고 세리머니하던 모습이 인상깊었다. 보조개 살인미소와 함께 머리위로 하트를 그려서 보는 사람을 다 설레게 했는데, 누구를 위한 세리머니였나? 승리하는 순간에 어떠한 마음이었는지?
▶마지막 결승골 득점 장면은 제게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그 동작은 그 동안 수없이 준비를 해오고 겪었기 때문에, 그 타이밍에 패스가 올 거라는 걸 순간적으로 미리 예측을 하게 됐다. 그래서 퍽이 날아오는 순간 슬로우 모션처럼 와서 마지막까지 퍽에 집중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골리와 골문과의 틈이 너무 작아서 골을 넣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잘 들어가서 너무 기뻤다. 사실 세리머니 할 때는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경기가 끝나니까 이제 함성이 들리고 정말 기뻤다. 하트 세리머니는 그날 여자친구가 경기장에 와서, 여자친구를 위한 세리머니였다.
-이번 평창패럴림픽에서 아이스아이스하키 팀의 열정적인 경기력 덕분에 날이 갈수록 사람들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인기를 실감하는지?
▶패럴림픽 종목 자체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그동안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무관심 속에서 운동해왔다. 그래서 저희로서는 이곳 경기장에서 관중 분들의 응원이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큰 힘이 된다. 이러한 관심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우리나라 장애인아이스하키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 후에도 계속해서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신다면 앞으로 패럴럼픽 선수들이 더 힘내서 좋은 모습으로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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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유치에 많은 분들이 힘쓰셨다. 3수만에 성사됐다. 그동안 모든 과정을 함께 해왔다. 그래서 무척 뜻깊다. 내게 평창은 꿈의 무대였다. 지금 평창에서 동메달을 따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또 그 과정에서 홍보대사라는 큰 직책을 주셔서 너무 영광이었다. 덕분에 '연느님' 김연아 선수도 만나고,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현역 선수로 훈련에 매진하다 보니 더 많은 일들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홍보를 위해 힘썼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정승환이라는 선수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잘생긴 선수들이 정말 많다. 정승환 선수의 팀내 서열은?
▶제 서열은 글쎄… 일단 저희 주장 한민수 선수에 대해 두 가지로 평가가 나뉜다. 하나는 탤런트 공유! 그리고 하나는 전광렬이다. (웃음) 이종경 선수가 박시후 닮았다는 소리를 엄청 많이 듣고, 이지훈 선수도 잘생겨서 꽃미남이라는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듣는다. 이주승 선수도 잘생겼고… 그리고 우리 조영재 선수가 덩치와 다르게 되게 귀엽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우리 동생들이 앞으로 더 많이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 20대 선수들 중에 (이)지훈이나 (이)주승, (최)시우 그리고 미국전, 이탈리아전에서 잘해준 골리 (이)재웅까지 젊은 선수들이 주목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빙판 메시', '로켓맨'이란 멋진 별명이 있다. 이 별명을 얻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팀내에서 따로 불리는 별명이 있나?
▶저는 축구를 좋아해서 '빙판 메시'라는 별명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수비적으로 경기를 많이 하다 보니깐 개인적으로 드리블이나 공격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체코, 이탈리아전에서 조금이나마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캐나다와의 4강전에서 패배한 후 믹스트존에서 등을 돌리고 울었다. 인터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
▶캐나다전은 너무나 아쉬웠던 경기다. 패럴림픽에서 결승을 간다는 건 정말 엄청난 영광이고 모든 장애인아이스하키선수들의 꿈이다. 수천번, 수만번 머릿속으로 그렸던 간절하고 특별한 날이었는데 상상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가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캐나다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패하는 바람에 아쉬워서 눈물이 났었다. 사실 그날 믹스트존을 떠나면서 다 잊어버렸다.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그 경기를 빨리 잊었다. 너무 피곤해서 자고 일어났더니 문자가 엄청 많이 와있었다. '울보'라고 놀리는 내용도 있었고 '힘내'라는 말도 많았는데, 정말 큰 힘이 됐다. 덕분에 동메달을 딸 수 있었다.
-결승골을 어시스트하고 동메달을 획득한 소감은?
▶동메달 후 믹스트존에선 울지 않았다.(웃음) 우리가 결국 해냈다. '아버지 동메달 땄습니다!' 늦었지만 아버지 영전에 들고가 보여드릴 것이다. 끝까지 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해 밀어붙였다. 종료 3분전 골이 들어간 후 끝까지 이 골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강릉아이스하키센터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던 장면, 내 인생 최고의 애국가였다.
-캐나다전부터 진통제 투혼을 발휘했다.
▶사실 이탈리아전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어깨, 허리가 좋지 않아 경기전에 진통제를 먹고, 주사도 맞았다. 3피리어드 들어가기 직전 진통제를 하나 더 먹었다. 팀이 승리할 수만 있다면 어깨가 부서져도 괜찮았다. 그 정도 부상이 나를 멈춰세울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메달 후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격려하는 모습도 인상깊다. 무슨 말을 나눴나?
▶대통령께 '와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더니 '수고했다.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다. 염치 불구하고 꼭 이천장애인훈련원에 아이스하키 전용 경기장을 지어달라고 부탁드렸다.
-동메달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소감은?
▶나는 항상 어시스트 하는 걸 좋아한다. 누가 주고, 누가 넣었는지 뭐가 중요하나. 우리가 이겼다!예선 체코전이 '인생게임'이었는데 이제 이탈리아전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말 판타스틱한,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순간이었다.
-메달이 없어도 '이미 최고'라고 응원이 쏟아졌는데도 그렇게 메달이 간절했던 이유는?
▶'이미 4강에 올라서 역대 최고 성적이다'라고 했지만, 선수 입장에서 메달이 꼭 있어야 했다. 메달을 따서 연금 받고 포상 받고 그런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 메달이 너무 갖고 싶었다. 평창에서 다른 선수의 메달을 두 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만져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손으로 내 것을 직접 목에 걸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동메달을 직접 목에 걸어보니 엄청 묵직하더라.
-패럴림픽을 준비하면서 기억나는 순간이나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면?
▶선수생활을 지금 13년 정도 하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골을 넣었던 경기보다 장애인아이스하키를 처음 시작했을 때인 것같다. 패럴림픽 폐막 후에는 패럴림픽 경기마다 강릉하키센터 좌석을 꽉 채워주신 관중 분들의 함성 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첫경기부터 마지막경기까지 너무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놀랐다. 마지막 이탈리아전 종료 직전, 3!2!1! 다함께 외쳐주실 때 감동이었다. 정말 '행복'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너무 감사드린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에너지를 받은 것같다.
-패럴림픽이 끝나고 정승환이라는 선수가 어떤 운동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일단 우리 장애인아이스하키팀뿐만 아니라 패럴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신 분도 있고,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으시게 된 분들도 있다 보니 운동을 시작한 나이와 시작한 계기가 다 다르다. 그런데도 그 아픔과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스포츠를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분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하는 선수들 또는 젊은 나이에 시작하는 선수들이 평창 패럴림픽에서 메달이라는 꿈을 가지고, 같은 꿈을 꾸면서 함께 치열하게 준비했다.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함께 싸워왔다는 것만으로 정말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앞으로 이분들이 은퇴를 하고 난 뒤에도, 장애인스포츠라는 분야에서 지도자나 장애인체육 쪽으로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도와주셨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만큼, 정승환이라는 선수는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인 선수', '성실한 선수'로 기억됐으면 한다. 저는 어릴 때 장애인스포츠를 몰라서 일찍 시작하지 못했지만 정말 평창패럴림픽을 통해 인식이 개선돼서 우리 어린 친구들이 장애인스포츠를 일찍 시작했으면 좋겠다. 좋은 환경에서 운동했으면 좋겠다. 장애인 스포츠라고 하면 이전에는 재활 스포츠로 치부하고, 일반적인 스포츠로 인식하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다. 이제는 장애인 스포츠선수들 또한 '운동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평창패럴림픽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