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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스토리] '역사상 첫 銀' 카바디, '기적' 아닌 '피와 땀' 있었다

선수민 기자

기사입력 2018-08-24 19:54



졌지만 잘 싸웠다. '기적'이 아닌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낸 값진 은메달이다.

아시안게임 남자 카바디 대표팀은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가루다극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남자 카바디 결승전에서 15대26으로 패했다. 이미 역대 최고 성적을 예약한 한국은 이란에 덜미를 잡혔다. 그러나 카바디 대표팀의 은메달은 감동을 선사했다. 대중들에게 생소한 카바디라는 스포츠. 열악한 지원 환경 속에서 역대 최고 메달을 따냈다. 관계자들은 "기적이 아닌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라고 했다.

카바디는 고대 인도 병법에서 유래한 종목으로, '숨을 참다'라는 힌두어다. 상대 진영에서 수비에게 잡히지 않고, '카바디'를 외치며 상대를 터치하면 점수가 올라간다. 카바디 대표팀은 '카바디 최강' 인도를 비롯해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차례를 꺾었다. 지난 23일 준결승에선 파키스탄을 27대24로 꺾고, 첫 결승전에 올랐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뛰어 넘는 최고 성적.

인도를 꺾은 한국의 기세는 매서웠다. 경기 전 인도 기자는 대한카바디협회 관계자를 찾아와 '인도를 꺾은 비결'을 질문했다. 그 정도로 인도에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 기세를 이어 이란을 상대했다. 상대 수비수를 잡아내며 먼저 선취점을 올렸다. 이후 승부는 팽팽했다. 이란이 수비에서 여러 차례 한국 공격수를 잡아냈다. 전반전을 8-10으로 뒤진 채 마쳤다. 공격 실패로 선수들이 잇달아 빠진 상황에서 고전했다. 이란이 기세를 올리며 15-8로 달아났다. 점수는 서서히 벌어지면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충분히 박수 받을 만 했다. 카바디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훈련한다. 한국 카바디를 대표하는 이장군(26·벵골 워리어스)의 경우에는 인도 프로리그에서 슈퍼 스타다. 어딜 가든 팬들이 따라 붙을 정도. 연봉이 1억1000만원이다. 그러나 모든 선수가 고액 연봉을 받는 건 아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대표팀은 촌 외 훈련을 했다. 부산 동아대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지난해 국가대표 12명의 선수 중 10명이 인도리그에서 뛰었지만, 그 외 선수들은 본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대학생, 헬스 트레이너, 물리 치료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카바디 등록 선수는 17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카바디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기에 등록 인원도 수시로 변경될 정도. 문병선 대한카바디협회 전무이사는 "대학교에도 100명 정도의 선수들 밖에 없고, 동아리처럼 하는 수준이다"라고 했다.

문 이사는 '기적'보다는 '철저한 노력과 준비'로 만들어낸 결승 진출이라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 많이들 기적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처음 출전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부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그리고 지금까지 8년 넘게 준비를 잘해왔다. 리그가 끝나면 선수들이 모여서 훈련을 자주 했다. 4년 전부터 계속 맞춰온 선수들이다. 용돈을 벌어서 훈련을 하기도 한다. 메달을 땄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의 영화와 같은 값진 메달이었다. 온갖 서러움을 실력으로 이겨냈다. 대한체육회 준회원 단체인 카바디협회는 유니폼, 단복 등을 제공받지 못했다. 따라서 협회에서 단복을 자체 구입하여 대회를 준비했다. 부상 투혼도 있었다. 예선전을 치르면서 대다수의 선수들이 부상을 입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경기장에 나서야 했다. 자체 트레이너도 없기 때문. 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뒤에야 자원한 물리 치료사가 따라 붙었다. 악전고투 속에서 나온 은메달.

누군가는 기적이라고 하지만, 노력의 대가였다. 팬들의 무관심 속에서 시작한 카바디 남자 대표팀은 '카바디'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제대로 알렸다. 금메달 사냥에는 실패했지만, 이들의 더 큰 꿈을 향한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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