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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57위의 동메달" '강심장 탁구신성'안재현, 세계선수권 메달의 의미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9-04-29 05:28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세계랭킹 157위 선수가 여기까지 온 것은 기적이다. 세계선수권 최대 이슈다. 만나는 이들마다 '서프라이즈'라고 한다."

김택수 남자탁구 대표팀 감독은 '막내온탑' 안재현(20·삼성생명)의 부다페스트세계탁구선수권 동메달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세계선수권에 첫 출전한 세계랭킹 157위의 스무 살 한국선수가 남자단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탁구선수권은 올림픽보다 무시무시한 무대다. 내로라하는 전세계 에이스들이 총출동한다. 판젠동, 쉬신같은 톱랭커들도 긴장하다가 이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대회다. '강심장' 안재현은 매경기 패기과 여유가 넘쳤다.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이상수, 정영식, 장우진 등 선배들이 주목받는 새 휴일까지 반납하고 이정우 대표팀 코치와 남몰래 치열하게 훈련해온 피, 땀, 눈물이 보상받았다. 안재현의 동메달은 '백전노장' 김 감독조차도 예상치 못한 반전 결과였다. 김 감독은 "대회 전에 32강 이상만 가면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하리모토까지 이기고, 8강, 4강까지 올라갔으니 이제 뭘 선물해야할지 고민"이라며 미소 지었다.

안재현은 28일(한국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헝엑스포에서 열린 2019 세계탁구선수권(개인전) 남자단식 4강에서 세계 16위 마타아스 팔크(스웨덴)에 3대4(11-8, 7-11, 11-3, 4-11, 9-11, 11-2, 5-11)로 패하며 동메달을 확정지었다. 2003년 파리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깎신' 주세혁(한국마사회) 이후 16년만의 결승 진출은 불발됐지만 이번 대회 '막내' 안재현의 파이팅은 눈부셨다. 128강에서 '홍콩 톱랭커' 웡춘팅, 16강에서 '일본 16세 천재' 하리모토 도모카즈, 8강에서 '대세 선배' 장우진을 줄줄이 꺾고 4강에 오른 후 준결승에서도 패기만만한 플레이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상수, 시몽 고지(프랑스) 등을 꺾고 4강에 오른 팔크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안재현은 1세트를 11-8로 가볍게 따냈다. 2세트를 7-11로 내줬고, 3세트를 11-3으로 압도했다. 4세트를 4-11로 내준 후 세트스코어 2-2에서 맞은 5세트가 승부처였다. 안재현은 7-2까지 앞서나가다 9-9 타이, 9-10 역전을 허용했다. 9-11로 5세트를 내줬다. 6세트 안재현은 심기일전했다. 11-2, 9점차로 상대를 돌려세웠다. 마지막 7세트, 안재현은 먼저 2포인트를 잡아내며 4-2로 앞서나가다 내리 8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결국 5-11로 마지막 세트를 내주며 세트스코어 3대4로 석패했다.

준결승에서 비록 패했지만 세계랭킹 157위, '언더독' 안재현의 믿을 수 없는 선전은 대한민국 탁구의 저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강인한 정신력과 패기만만한 플레이로 '최연소 동메달'을 획득하며 내년 도쿄올림픽, 부산세계선수권을 앞두고 한국탁구의 새 희망을 밝혔다. 안재현은 역대 6번째 한국 남자 단식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1991년 지바대회에서 21세에 동메달을 따낸 김택수 남자대표팀 감독, 2003년 파리대회에서 '역대 최고성적'인 은메달을 따낸 '깎신' 주세혁(한국마사회), 2005년 상하이 대회 동메달리스트 오상은 미래에셋대우 코치, 2007년 자그레브 대회 동메달리스트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2017년 뒤셀도르프 대회 동메달리스트 이상수(삼성생명) 등 '위대한 계보'를 이어가게 됐다.





안재현은 "4강에 오를 줄 몰랐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니 톱랭커들도 이겼다"며 기적같은 동메달의 비결을 전했다. 준결승에서 다 잡은 경기를 놓친 후 아쉬움의 눈물을 쏟았다.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갔는데 5세트에서 소극적으로 해서 졌다. 7세트도 그랬다. 경험이 부족했다.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이길 수 있는 찬스였는데… 결승도 해봤어야 하는데…"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남녀 탁구국가대표팀은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고(故)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대회 기간 내내 검은 리본을 달고 뛰었다. 안재현은 "이곳에 오기 전에 고 조양호 회장님 조문을 다녀왔는데 기회를 잡아서 마룽을 꺾고 우승으로 보답하고 싶었는데 죄송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8강에서 (장)우진형을 이기고 올라갔다. 형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세컨드 라켓도 빌려주시고, 새 러버도 주셨는데 져서 더 죄송하다"고도 했다. "좀 더 발전해서 더 좋은 성적으로 다시 오겠다. 계속 꾸준히 국가대표로 뽑혀 형들과 같이 다니면서 배우고 싶다. 열심히 해서 형들을 이기고도 싶다. 다음 대회에는 꼭 우승에 도전하겠다"며 눈을 빛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부다페스트탁구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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