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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⑵:태권도·올림픽과 교집합을 위해

기사입력 2025-04-17 07:52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코번트리 당선인(왼쪽 가운데 백인 여성)이 주짐바브웨 한국대사관저에서 열린 태권도용품 기증 행사에 참석해 새 도복을 선물 받은 짐바브웨 태권도 수련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6.26. [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은별 고려대 언론학 박사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동서남북으로 각각 모잠비크, 보츠와나, 남아공, 잠비아를 접경하고 있는 내륙국 짐바브웨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최초의 여성·아프리카인·짐바브웨 출신 커스티 코번트리(Kirsty Coventry)가 IOC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1983년생인 그녀는 만 41세의 나이로 그간 세계 스포츠계에 견고하던 유리 천장을 깼다.

나는 지난해 주짐바브웨 한국대사관 공식 행사에서 그녀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그녀를 짐바브웨 수영 국가대표 출신의 유일무이한 금메달리스트이자 국제 스포츠 행정가, 문화체육부 장관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국제 스포츠 무대의 수장이 되어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고, 자연스레 아프리카와 올림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난해 열린 2024 파리 올림픽에 아프리카 54개국에서 몇 명의 선수가 출전했을까. 전체 참가 선수의 약 10%에 해당하는 1천64명이 출전했다. 이는 미국 대표팀 653명의 두 배에 못 미치는 수치로, '대륙 전체' 규모로는 적은 수다. 단 한 명의 선수가 육상에 출전하는 소말리아부터 아프리카 국가 중 최다 인원인 165명이 출전하는 이집트까지 국가별 차이가 크다. 일부 축구·럭비 등 단체 종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육상과 수영 등 몇몇 종목에 집중돼 있다.

올림픽 관련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듯한 아프리카와 우리가 공유한 몇 가지 인연도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소재로도 등장한 마다가스카르는 일부 공산 진영의 보이콧으로 막판에 서울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였다. 케냐 출신 에루페는 2018년 귀화해 '오주한'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올림픽에서 한국에 메달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한편,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아프리카 국가들도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태권도 남자 은메달리스트 앙토니 오바메는 가봉, 2016 리우 올림픽 태권도 남자 금메달리스트 셰이크 살라 시세는 코트디부아르 선수이다. 루스 그바그비 역시 같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고국에 안겨 코트디부아르의 첫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처럼 스포츠는 국적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넘어 공정한 경쟁 선상에서 '탁월함(excellence), 우정(friendship), 존중(respect)'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실현한다. 그리고 태권도는 아프리카 스포츠계의 외연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짐바브웨와 올림픽의 인연도 코번트리 당선인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녀는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후, 2016년 마지막 올림픽까지 총 7개의 올림픽 메달(금2, 은4, 동1)을 목에 걸었다. 특히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남유선 선수가 400미터 개인 혼영 결선에 진출했을 때, 코번트리는 200m 배영 금메달, 100m 배영 은메달, 200m 개인 혼영 동메달을 획득해 짐바브웨 역사상 최초의 개인 메달리스트가 됐다. 인프라 부족, 국가 차원의 훈련 지원 미비, 소수 백인에 대한 역차별 등 짐바브웨가 직면한 여러 악조건을 고려했을 때, 그녀를 국민적 스포츠 영웅으로 치켜세울 만하다.

이러한 코번트리 당선인이 태권도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해 6월 26일 주짐바브웨 대사관저에서 열린 태권도복 기증식에 참석했다. 국기원 파견 사범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30여 개의 태권도 클럽을 격려하고, 자기 경험을 빌어 짐바브웨 출신 태권도 메달리스트를 염원했다. 이 자리에는 2021년 'IOC 여성과 스포츠상' 아프리카 지역 수상자인 나치라이셔도 참석했다. 나치라이셔는 여전히 교외 지역에 남아있는 조혼이라는 악습에 맞서 태권도를 통해 여성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당찬 활동가이자 선수다. 특히 태권도 훈련 단체인 부파(VUPA: Vulnerable Underaged People's Auditorium: 취약한 미성년자들을 위한 오디토리움)를 꾸려 여성 인권·교육·보건 환경 개선에 나섰다. 아마 코번트리 당선인은 나치라이셔를 보며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선수 시절을 회상하지 않았을까.

짐바브웨를 포함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는 태권도용품, 전문 코치, 훈련 시설, 대회 참여 기회, 업무 협약 등 '올림픽 진출'에 필요한 기반을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소규모 클럽을 통해 훈련에 매진한다. 기증식에서 만난 짐바브웨의 태권도 꿈나무들은 한국에서 온 빳빳하고 새하얀 도복을 끌어안은 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 아이들의 진심과 태권도로 심신 훈련에 나선 이들의 결심이 모여, 머잖아 올림픽 태권도 시상식에서 짐바브웨 국기가 게양되는 짜릿한 상상을 해보았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여성이 IOC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작금의 움직임을 보자니 아프리카, 태권도, 올림픽의 교집합을 만들어낼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아프리카, 알고 보면 스포츠계도 다채로운 변화의 물결 위에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은별 박사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unbyully@gmail.co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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