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도 괜찮아, 자신감 있게"...'韓 휠체어테니스 최강자' 임호원, 오늘도 성장한다...그랜드슬램 도전-지도자 꿈까지 '무럭무럭'
[스포츠조선 이현석 기자]봄볕이 완연하게 드리운 4월의 올림픽공원 테니스장. 베이스라인에 자리한 두 선수. 코트에 두 번 튕긴 후 떠오른 공은 호쾌한 기합 소리와 함께 라켓을 떠나 네트를 넘었다. 선 안에 떨어진 공과 선 밖에 떨어진 공 하나, 하나에 선수들이 울고 웃었다.
'한국 휠체어테니스 막내' 임호원(27)은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막을 내린 서울코리아오픈 국제휠체어테니스 대회에서 단식 16강, 복식 4강에 올랐다. 이번 서울코리아오픈은 ITF 1 시리즈(3번째 레벨)로 그랜드슬램, 슈퍼시리즈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회로, 부산, 대구를 거쳐 서울서 마무리되는 휠체어테니스 투어 코리안 시리즈의 일환이다. 임호원은 2022년 서울코리아오픈에서 단식, 복식 2관왕을 차지한 바 있다.
휠체어테니스는 이동에 장애가 있거나, 사지기능이 부분적으로 손상된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테니스를 치는 종목이다. 투 바운드(2회의 볼 바운드)를 허용하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테니스룰과 같다. 임호원은 3번의 패럴림픽, 2번의 장애인아시안게임에 나선 한국 휠체어테니스 간판스타이자 2018년 자카르타장애인아시안게임 남자복식 은메달, 2022년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남자복식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 임호원은 단식 16강에서 네덜란드의 루벤 스파르가렌(세계 9위)을 만나 세트 점수 0대2(2-6, 3-6)로 패했다. 복식에선 4강에 올랐다. 다니엘 카베르사스키(세계 3위), 스테판 우데(세계 6위)에 세트 점수 0대2(4-6, 5-7)로 막히며 결승행은 놓쳤지만, 3위라는 호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예선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2024년을 손가락 부상으로 힘들게 보냈다. 지난해 11월 대표선발전 이후 재활에 집중했기에 아직 완전한 컨디션은 아니다. 앞서 부산, 대구오픈에 참가하며 빡빡한 대회 일정까지 소화했다. 대구오픈에선 단식 4강, 복식 준우승을 거뒀다. 체력 소모도 컸다. 임호원은 예선전을 이긴 후에도 "좋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톱랭커들을 상대로 결승행을 놓친 건 아쉽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경기력이 살아났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임호원은 "단식도 복식도 아쉽게 졌다. 그래도 좋은 경기력으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아쉽지만 기분은 좋다"고 밝혔다. 이어 "'코리안시리즈'는 규모도 워낙 크고 외국 톱랭커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국내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맞붙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면서 "우승을 해봤기에 언제든 다시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른 감이 있다"고 돌아봤다.
임호원에게 지난해 열린 파리패럴림픽은 도약의 발판이 될, 새로운 생각을 심어준 '전환점'이 됐다. 임호원은 "파리를 다녀오고 본격적으로 내 시합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충분히 운영을 하며 경기할 수 있다"면서 "지금은 과도기다. 실수도 많이 나오지만, 계속 고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주도적인 경기 운영을 통해 2026년 아이치·나고야장애인아시안게임, 2028년 LA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경기력이 만족스럽고, 원하는 대로 플레이한다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항저우에서 복식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아이치·나고야에서도 좋은 성적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부담보단 기대가 된다. 단식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단식 메달도 하나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의지를 다졌다.
선배의 역할과 휠체어테니스의 미래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 '구력'은 이미 베테랑이다. 11세에 라켓을 처음 잡았다. 2013년 아시아장애청소년대회(쿠알라룸푸르)에서 한국 휠체어 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며 이름을 알렸다. 장애인전국체전에선 2016년부터 단식 9연패를 달성하며 독보적인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바쁜 국제대회 일정에도 임호원이 체전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 시간을 쏟는 이유는 바로 그를 롤모델로 성장하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임호원은 "후배들이 체전에 많이 뛴다. 상대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 많이 알려주려고 하고, 그런 태도로 경기에 임한다"라며 "후배들과 경기할 기회가 사실 체전밖에 없다. 1년에 하루, 한 번 정도 경기하는데 그때마다 선수들이 많이 늘고 있다.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고 했다. 임호원은 "후배들에게 '자신감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 운영과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꼭 이기려고 안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 이기려고 하면 소극적으로 변한다. 적극적인 경기 운영, 자기주도적인 경기를 해야 한다. 이기려다 보면 실수를 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생긴다. 져도 괜찮으니까 자신감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얘기를 해준다"고 했다. 후배들을 보며 지도자로서의 꿈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임호원은 "옛날엔 생각이 없었는데, 어린 친구, 또래 친구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면, 지도자를 해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다만 아직 나이가 어리고 선수 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기에 나중 일이 되지 않을까. 후배들과 만날 시간이 없다 보니까, 이런 대회에 나올 때 자주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고 했다.
숨가빴던 코리안시리즈는 끝났지만 쉴 틈이 없다. 15일부터 시작될 재팬오픈(슈퍼시리즈) 출전을 위해 곧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재팬오픈 이후에도 짧은 휴식 후 마드리드오픈, 바르셀로나오픈이 줄줄이 이어진다. 6월 휴식기 전까지는 강행군, 목표는 그랜드슬램 출전권이다. 그랜드슬램은 호주오픈, 롤랑가로스, 윔블던, US오픈까지 테니스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4개 대회. 태극마크를 단 이후 줄곧 꿈꿔온 무대다. 대구오픈 선전으로 랭킹을 18위까지 올린 임호원에게 상위 16명이 출전하는 그랜드슬램은 실현가능한 꿈이다. "매년 한끗차로 못나가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연습이나, 경기를 내 스타일을 만들어서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낸다면 충분히 갈 수 있다. 조급하진 않지만,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마음에 있다"고 했다.
그랜드슬램의 꿈, 부담보다는 설렘이 가득하다. 임호원은 "즐겨보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다. 재밌는 경험이 될 것같아 설렌다"며 웃었다. 임호원의 호쾌한 스트로크는 오늘보다 내일 더 강하게 뻗어나갈 예정이다. 이현석 기자 digh1229@sportschosun.com
2025-04-15 09:00:00